“9조 샤힌은 달린다”…구조조정 한파 속 ‘예외 없는 생존 게임’

2025-10-22

지난 21일 울산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건설현장. 축구장 120개 크기에 달하는 총 86만㎡ 부지에는 67m 높이의 스팀크래커(열분해시설) 4기를 비롯해 배관과 철골 구조물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인부들은 그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설비 공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의 이현영 현장소장은 “매일 출근하는 근로자들만 1만1000여 명에 달하고 바쁜 시기에는 1만2500명까지 투입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곽 뚜렷해진 ‘꿈의 설비’

에쓰오일이 추진 중인 샤힌 프로젝트는 국내 첫 정유·석화 통합공장(COTC·Crude to Chemicals)이다. 전체 공정 진척률은 85% 수준으로 2026년 6월 준공을 목표로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준공 후 시운전을 거치면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연간 180만 톤(t) 규모로 생산한다. 단일 설비 기준 세계 최대 규모로, 정유 중심 기업이던 에쓰오일이 석유화학의 핵심 플레이어로 도약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최근 국내 석유화학업계 구조조정으로 정유사와 석화사 간 ‘수직계열화’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샤힌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 공장의 핵심은 사우디 아람코의 첨단 기술 TC2C(Thermal Crude-To-Chemicals) 공정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납사분해공장(NCC)이 원유를 정제하는 등 중간과정을 거쳐 납사를 얻는다면, TC2C는 기존의 정제 공정을 거치지 않고 원유에서 곧장 납사와 액화천연가스(LPG) 등으로 전환해내는 기술이다. 기존 원유 정제 시설로 납사를 얻는 수율은 약 30% 수준이지만, TC2C 공정은 이를 70%까지 끌어올렸다. 정유와 석화의 경계를 허무는 ‘꿈의 공정’으로 불리는 이유다.

에쓰오일은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 집약된 설비”라고 소개했다. TC2C 공정으로 생산된 납사는 스팀크래커에 투입돼 폴리머(선형저밀도·고밀도 폴리에틸렌) 생산으로 이어진다. 공정별로 구획된 광활한 부지 안에는 ① 원유에서 납사를 추출하는 TC2C 장치와 납사를 에틸렌으로 분해하는 스팀크래커 ② 에틸렌을 활용해 합성수지를 만드는 폴리머 공장 ③ 에틸렌 저장 시설이 차례로 자리한다. 토목·건축·철골 등 주요 공정은 대부분 완료됐고, 현재는 배관·전기 등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에쓰오일이 이처럼 대규모 프로젝트에 나선 것은 위기의식 때문이다. 전기차 전환과 탈탄소 정책이 맞물리며 석유 수요가 줄고, 정유업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워졌다. 여기에 중국 경기 둔화로 원유 수요가 약세를 보이면서 ‘정유에서 화학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정유 및 석유화학업계가 샤힌 프로젝트를 ‘산업 구조 전환의 상징’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석화 구조조정 속 샤힌은

샤힌 프로젝트를 보는 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석화업계가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인해 구조조정과 설비 감축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샤힌만 예외로 인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유 직도입으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한 정유사 에쓰오일이 감축에 나선 경쟁사들의 빈자리를 메우며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시황과 반대로 역발상 투자를 단행한 샤힌 프로젝트의 성과에 주목해야 한다”며 “낮은 원료 투입가와 규모의 경제로 손익분기점이 경쟁업체보다 훨씬 낮다”고 분석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석유화학 산업 재편의 취지는 과잉 설비를 줄이고 고부가가치 제품(스페셜티) 중심으로 산업 경쟁력을 높이자는 데 있다”며 “샤힌 프로젝트는 단순 증설이 아니라 고부가 전환을 앞당기는 산업 재편의 선도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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