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쪼그려 앉은 모습으로 시인 서정주를 찍었을 때 문단 일부에서는 “감히 똥 누는 자세로 찍었다”고 타박했다. 작고 3개월 전의 소설가 박완서는 자연 속에 그대로 스미는 듯하다. 예술가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카메라 든 채 기다리고 기다렸던 사진가 육명심이 15일 오전 4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93세.

193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출가한 부친은 ‘명심’이라는 이름만 남겼다. 미국의 신학대학원으로 유학 갈 요량으로 연세대 영문과에 들어갔고,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사진은 신혼여행 때 아내가 가져온 카메라로 조작법을 배운 게 시작. 1966년 동아국제사진살롱에 입선하면서 등단했다. 1975년 신구대, 1981년 서울예대 사진과를 창설했고, 1999년 서울예대를 정년으로 퇴임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한국의 대표 문인 72명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 『문인의 초상』(2007). 고인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찍고자 했다”며 “외국 유명 작가들의 작품과 유행하는 사조를 연구해 봐도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진은 그들의 삶과 문화적 배경 속에서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일 뿐 우리는 우리 눈으로 우리나라를 보라”고 말한 바 있다.
자화상 찍듯 빠져든 『장승』, 제주 해변의 모래찜에서 우연히 죽음의 모습을 포착한 『검은 모살뜸』도 남겼다.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명희 전 청담초교 교장, 자녀 은정 국민대 영문과 교수, 현수 전남문화산업진흥원 AX지원팀장이 있다. 빈소는 서울 연세대 강남 장례식장 3호실, 발인 17일 오전 6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