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학 발전으로 암은 진단과 치료, 회복과 재적응의 여정을 거쳐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질환이 됐다. 치료 중이거나 치료를 마친 ‘암 생존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존 이후의 삶에는 구토, 식욕부진, 체중과 근 감소, 소화장애, 불면, 불안, 피로 등 일상 복귀에 어려움을 주는 다양한 문제가 기다린다. ‘회복’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또 다른 치료 과정으로 인식돼야 한다는 의미다.
암은 신체뿐 아니라 식습관, 심리, 사회적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생존을 넘어 일상 기능과 삶의 질을 회복하는 암 재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암위원회(NCCN)는 예방, 회복 등 암 재활의 모든 단계에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핵심 요소를 지목하는데, 그것은 바로 ‘영양 재활’이다.
영양 재활은 환자의 암 종류, 치료 단계, 수술 부위, 기저질환, 유전정보, 장내미생물 등을 반영해 시행되며 필요시 영양을 보충하게 된다. 여기에는 경장영양(입이나 위장에 관을 삽입해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 등의 방법도 포함된다.
이를 통해 체중 유지, 근육량 보존, 면역력 개선, 항암 내성 완화, 치료 지속률 향상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항암 효과를 저해하는 영양소 결핍을 조기에 보완하거나, 치료 부작용으로 인해 식사가 어려운 환자에게 적절한 형태의 영양을 제공함으로써 회복 속도와 질을 높이는 것이 가능하다.
해외에서는 암 환자의 영양 재활에 정밀영양 개념의 접근이 확산하는 중이다. 세계적인 암 전문병원인 미국 MD앤더슨 암센터는 유전체, 식이 패턴, 체성분, 혈액·장내미생물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식단을 설계하고, 모바일로 실시간 피드백을 제공한다. 일본은 영양 재활을 제도화해 병원·지역사회·가정을 연계하며, 특히 고령 암 생존자의 근감소증 예방을 표준 진료에 포함한다.
국내에서도 암 생존자 통합지지센터 시범 사업이 다양한 신체·정신적 회복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국가암정보센터 주도의 대규모 암 코호트는 맞춤형 중재 모델의 설계 기반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여전히 일반 교육이나 일회성 상담에 머물러 있으며, 생리·유전·장내미생물 정보 기반의 정밀영양 개입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최근 한국식품연구원에서는 환자의 식이·임상·유전체 정보를 통합한 부작용 예측 및 맞춤형 식이 개선 제안을 위해 정밀영양 중재 모델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이 연구는 임상 현장 적용 가능성을 검증하고, 실질적인 암 영양 재활 모델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이러한 시도의 의료 현장 정착을 위해서는 정밀영양 중재를 위한 건강보험 수가화, 의사·영양사·운동치료사·심리상담사 등 병원 내 전문가의 협업 구조 일상화가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유전체, 장내미생물, 치료 반응성과 같은 민감한 개인 생체 정보 활용을 위한 개인정보 보호 관점의 법적·윤리적 기반 마련과 가이드라인 정비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
암 재활은 진단 시점부터 시작되는 삶의 회복 여정이다. 암 생존자에게 진정한 회복은 병의 통제를 넘어 신체기능 유지, 심리적 안정, 일상 복귀, 그리고 영양 상태의 복원까지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앞으로 암 생존자 지원 체계는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정밀영양 기반의 재활 모델을 포함해 설계돼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기술 인프라 구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암 생존자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준비는 이제 의료계를 넘어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지고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