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실 컴퓨터에 2025년 폴더를 만들었습니다. 2025년 동안에 쓸 이런 저런 자료들, 서류들이 담길 것입니다. 한 해가 갔다는 뜻입니다. 2008년 폴더부터 2025년 폴더까지 한 줄로 나열된 것을 봅니다. 개원 참 오래 열심히 했습니다.
2024년 어느 날, 우리 치과가 양심 치과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출처는 어느 분의 인터넷 카페였습니다. 근거가 확실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저를 양심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어서 가만히 저의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진료를 하면서 양심을 의식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그 동안 제가 어떻게든 양심적이었나 봅니다.
2024년, 저는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불필요한 치료는 권하지도 시행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능력 밖의 일은 정중히 사양하였습니다. 환자도 저도 쓸데없이 고생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대로 사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힘들고 아프다는 호소를 받아주었습니다. 오해나 억측도 받아주었습니다. 정당성과 양심에 대한 요구도 들어주었습니다.
제가 치과의사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가장 큰 성장은 제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이 찰랑거릴 때, 제 심연의 상처와 쓴 뿌리가 자극될 때, 잠시 쉬며 저의 마음을 다독이는 재주를 얻은 일일 것입니다. 2024년 한 해 동안에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제 안에서 무언가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이 환자분들의 눈에 양심적인 모습으로 보였던 것은 아닐까요.
2025년에는 더 깊고 넒은, 마음의 저수지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저수지에 훌륭한 배출구를 설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머리와 눈과 손이 성장한 만큼 마음도 성장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좀 더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율법처럼 느껴지는 양심의 법에 갇히기보다는 넓고 자유로운 사랑의 공간에 저의 영혼이 머물게 되기를 바랍니다.
양심 치과 리스트처럼 2025년, 사랑 받을 사람 리스트도 작성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리스트에 내 가족의 이름도 선명하게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한 해가 지나고 그 리스트를 바라볼 때 부족함이 없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족하고 유한한 인간의 생각과 눈, 손끝으로 표현하는 불완전한 사랑이 그것을 덮고도 남는 누군가의 사랑으로 덮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한 해가 더해진 만큼 성숙하고 능숙하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숙함으로 인한 부침이 없는 2025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쩔 수 없는 부침이 양심 없음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하는 일, 완전하신 누군가의 완전함으로 덮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저와 함께 한 해를 보낼 직원들도 그 일에 기꺼이 동참하기를 소망합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함께 해야 바로 할 수 있는 일. 불완전한 우리들이, 함께할 때 이루어지는 일. 너 나 할 것 없이 누구든 먼저 시작하여 멋진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또 넘어지더라도 말입니다.
2025년 폴더는 이 글로 시작합니다. 2025년의 여정 가운데 이 글이 기도 같은 이정표가 되어 한 해의 마지막까지 저를 일으켜 세워주기를 바랍니다. 2025년에도 많은 사랑을 나누어주실 치과의사 선생님들의 건승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