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運)이 아홉이고 기(技)는 하나입니다

2025-02-05

치의신보 최 기자가 뜻밖에도 글(수필) 한 편을 부탁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10여 년 전엔 생각지 않던 ‘건치신문’ 논설위원이 되어 글쓰기 훈련을 했는데, 이제부터는 수필 수련을 하게 되나 보다. 응답 후 바로 글 제목으로 <운구기일(運九技一)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는 스스로 재능이나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좋다며 평소에 자주 입에 올리던 말이다. 화투 놀이에서 듣던 ‘운칠기삼(運七技三)’보다 더한 운을 타고 났다는 의미다.

한데 얼마 전 치과의사협회 신년하례식에서 올해의 상을 받은 ‘수필’이 생각나며, 과연 멋진 글이 가능할까? 하필이면 치의신보에 실린 치과의사 문인회 이야기 중, 글솜씨 고수들이 모여 품평회도 한다기에 문인회 회원이 아닌데도 걱정이 좀 됐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했든가? 어울리지 않는 ‘사자성어’까지 생각났다.

망구(望九)를 지나 이날까지 겪은 크나큰 운(運)으로는 일곱 살 때 2층 창틀을 넘어 떨어져 의식을 잃으며, 한쪽 눈에서의 출혈 이후 시력이 점차 사라지긴 했지만 바로 다음 날 깨어난 일이 첫째요, 바로 석 달 전 출근길에 콘크리트 기둥을 받으며 에어백이 터지는 교통사고로 폐차를 하면서도 손가락 하나만 불편한 채, 멀쩡히 살아남은 일이 두 번째 운이라 하겠다.

목숨을 건진 운(運) 말고도 평생 수도 없이 많이 받은 이런저런 것 가운데 몇을 생각나는 대로 돌아본다.

우선 언제 어디서 어떤 부모님을 만나 태어났나? 참으로 훌륭한 부모님을 만난 일이다. 어른이 되도록 가난을 모르게 키워주신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하는 날, 만주(간도) 용정 교민회장을 지낸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원하는 학업 대신 일찍이 상업에 투신했는데, 8.15광복 후 용정에서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청진으로, 1948년 갑작스러운 탈북으로 38선(한탄강) 넘기, 서울에서 2년여 만에 피난길로 부산을 돌아 서울까지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65년을 사셨다. 약관 22세에 사업차 일본을 다녀오는 길에 서울 화신백화점에서 아들 ‘돌복(돌服)’을 마련했는데, 피난 시절 부산 국제시장 큰 화재 때 그만 ‘돌사진’이 타버렸다. 어머니는 여학교 졸업 후 잠시 은행원을 지내고 결혼 후 평생 남편과 자식을 돌봤는데, 세 자녀 모두 명문 초등학교, K 중고교에, S대, E대를 다니게 키웠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58년 고3 진학 면담에서 원하는 의대도 지원은 할 수 있으나 미국에서 인기가 있는 ‘치대’에는 안심할 수 있다는 담임선생의 권고에 어머니는 바로 “좋아요. 재수도 원치 않고요”로 답했다. 하긴 아버지는 원하는 대학을 쉽게 포기한 아들이 못마땅한 눈치였다. 국민(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모두가 써낸 장래희망에 ‘의사’라고 한 후 단 한 번도 다른 진로는 생각한 일이 없었건만, 김세영 담임 선생님과 어머니의 한마디로 양의사가 아닌 ‘치과의사’가 된 운(運)은 ‘참으로 감사한 치과대학 4년’이란 글로 이어지기도 했다.

치대로 진학을 안내한 3학년 7반 김세영 선생님은 지난해 3월 7일에 뵙고는 그만 지난 추석날에 올 3월 7일의 만남을 앞두고 돌아가셨다. 고3 여덟 분 담임선생님 가운데 유일하게 건재하셨는데, 올해는 사모님께 대신 문안을 전할 참이다.

1967년 9월 시카고 대학에서 전공의를 하는 따님을 방문한 김규택 대 선배 어른을 우연히 만나는 행운(幸運)이 있었다, 이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 귀국해 교수를 하고 싶고 안되면 박사과정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에 아버님보다 위 연배인 김규택 박사로부터 1967년에 설립한 경희치대에 부속병원이 다음 해에 개원 예정인데, 마침 연세대에 치대 설립이 알려져 두 곳을 알아본다는 도움의 편지를 받았다. 당신께서는 훗날 초대 경희치대 학장이란 언급이 전혀 없이, 1968년 10월 연세치대에 소망하던 ‘교수’ 임용을 알선한 평생 은인이다.

1974년 치협 ‘국제이사’를 시작으로 모두 세 차례 국제이사와 부회장으로 1989년 14차 아태치과연맹 서울 대회를 치르고, 1992부터 연맹 부회장과 재무(Treasurer)를 1998년까지 지내고, 2008년엔 ‘2013 FDI 서울총회 유치위원장’을 맡았으니 수십 차례 비행기 타는 운(運)을 경험했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한때 하루 62명을 진료한 25년간의 개원을 접고, 환갑나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위원을 시작으로, 이후 ‘보험’ 인연으로 ‘사람사랑치과’ 병원장 취임과 이어 ‘대한치과보험학회’ 창립 및 협회 인준까지 그리고 지금 16년 차 사람사랑치과 원장으로 진료 의무도 없이 매일 출근한다. 우울증이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크나큰 운(運)으로 이어졌다. 말년에 남이 알아서 주는 상은 아니지만 ‘자랑스러운 서울대학교 치과인 동문상’을 가족에게 보여주는 운(運)도 있었다.

지난 연말 손녀사위를 포함한, 딸 아들 세 가족까지, 12명이 베트남 ‘나트랑’을 다녀왔으며, 올해 11월엔 결혼 60주년을 맞이하는 것은 오로지 훌륭한 ‘아내 만남’이 이룬 축복이다.

치과의사 60여 년을 돌아보면 알게 모르게 사회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인상을 받았으면 하며, 모임마다 치과계를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지내려 한 것 같다. 어제도 오늘도 수영장을 찾았으니 이 또한 대단한 운(運)이다.

이만하면 운(運)이 ‘아홉’이 아니라 ‘열’에 가까운 치과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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