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형사 재판 지연을 막기 위해 이유 없이 2회 이상 재판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궐석으로 선고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대법원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13일 ‘피고인 불출석 재판’의 요건을 완화하기 위해 소송촉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자문위는 재판제도 개선 등 주요 사법행정 현안 관련 안건을 심의·건의하는 대법원장 자문기구다. 현행법에 따르면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반드시 직접 출석해야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송달불능보고서 접수 6개월이 지나도록 피고인의 소재를 확인할 수 없을 때는 피고인 진술 없이 재판할 수 있다’(소송촉진법 23조)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지만, 경찰의 소재 탐지와 서류 송달에도 시간이 걸린다. 또 10년 이상 징역형 등 중형을 선고받는 피고인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선고를 앞두고 실형이 예상되면 몸을 피하는 피고인이 적지 않았다. 일례로 사기·유사수신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모씨는 지난해 7월 선고기일을 앞두고 돌연 잠적했다. 대구지법 형사10단독은 1년 동안 7차례 선고를 연기한 끝에 결국 궐석으로 서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정당한 사유 없이 선고 날 법정에 나오지 않으면 곧바로 궐석으로 선고가 가능하도록 사법촉진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자문위의 판단이다. 법원행정처 안팎에선 궐석 재판의 요건을 ‘이유 없이 2회 이상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을 경우’ 등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자리 잡은 공판중심주의를 재판을 지연하지 않는 적정한 수준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건의했다. 공판중심주의는 법정에 모든 증거를 집중하는 제도다. 자문위는 검찰과 피고인 측에서 증거를 신청할 때부터 중요도를 선별하기 위해 신청 취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써내도록 하자는 의견을 냈다. 입증 가치가 크지 않은데도 부당한 재판 지연을 초래하는 증거는 사전에 기각하겠다는 취지다. 또 증인을 신청할 때 직접 증거와 관련된 주요 증인인지 구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무더기 증인 신청’으로 재판이 한없이 길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녹음파일 등 증거조사를 할 때 파일 전체를 법정에서 전부 재생하는 대법원 형사소송규칙(134조·144조)도 개정을 추진한다. 양측이 모두 동의할 땐 녹취서를 읽는 등 간략하게 대체할 수 있지만, 한쪽이 원칙 준수를 요구하면 증거조사를 새로 해야 했다. 실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에서는 녹음 재생에만 7개월 가까운 시일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