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 인 아웃] 내가 못 나가는 것도 아닌데

2024-07-04

2021년 540명, 2022년 269명, 2023년 75명. 무슨 숫자일까? 매년 한 편의 영화를 개봉시킨 김충길 감독 영화를 본 관객 숫자(믿기지 않겠지만)이다. 이쯤 되면 영화를 그만두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고? 천만에! 김충길은 올해 3월 또 영화를 개봉했다. 영리하게 장편 기준인 러닝타임 60분에 딱 맞춰서.

김충길 감독의 ‘내가 못 나가는 것도 아닌데’는 고봉수 사단 출신 인물들의 숙명 같은 재능 부족 혹은 자기연민이 빛을 발하는 영화다. 내가 단역 오디션에 넣어준 친구가 감독 눈에 들어 주연을 꿰찼다. 주연은 원래 나였는데. 게다가 영화상 신인상을 수상하고 봉준호 영화에 캐스팅되더니 미니시리즈 주연도 맡았다. 길에서 여성들이 사인을 요구한다. 내 연기가 좋다는 댓글도 있고, 교회 목사님도 내 연기를 호평했는데 말이다.나는 총 맞는 연기를 정말 잘할 수 있는데, 전쟁영화만 찍으면 만사오케이인데.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단역을 얼마나 더해야 인정받을 수 있을까. 나의 질투를 감추면서 친구 인기에 흠집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세상사가 그렇지 않나? 자기보다 상대가 더 큰 성취를 이뤘을 때 대개는 상대의 성취과정을 의심한다. 콤플렉스 가득하고 비루한 인생일수록 제도의 오류와 부정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속 충길도 친구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는다. 단역에 꽂아준 것도, 감독에게 소개해준 것도 나였으니 자기 능력으로 이룬 게 아니라는 것. 나도 기회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찍이 르네 지라르는 이런 유의 사람들에게서 선망과 모방을 거쳐 폭력으로 이어지는 ‘짝패’를 보았다. 급기야 인터넷에 악플을 달았다가 이내 지우고는 단역 오디션을 보는(친구가 심사위원인) 충길의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욕망이 빚어내는 판타지다. 근래 한국영화에서 욕망하는 인물을 본지 꽤 되었다. 요컨대 ‘뭘 하고 싶은 건지’가 실종된 영화가 많았다. 반면에 김충길 영화의 인물은 욕망이 충만하다. 좋은 연기로 관객의 인정을 얻고, 대중의 사랑도 받고 싶다. 그중에서도 충길은 자기 욕망을 제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아차리는 캐릭터다. 김충길의 영화 속 비루한 인물들이 지리멸렬하게 그러나 쓸데없이 바쁘게 오가는 것처럼 보여도 속에 똬리를 튼 욕망까지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었다는 얘기. 누구보다 김충길 자신 말이다. 감독 김충길이 스스로 주연을 맡아 자기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작업.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영화 속 충길도 감독 김충길도 변함없이 영화를 찍고 있기 때문이다. 김충길 감독의 쉼 없는 행보가 설명되는 지점이다.

영화 속 충길은 배우로 인정받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충길의 일상은 실패의 늪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에겐 아직 제대로 된 기회가 오지 않았다. 번번이 주저앉지만 매번 일어나는 회복탄력성 장인 김충길. 누군가의 눈부신 성공 뒤에는 늘 뭔가를 시도하고 끈질기게 밀어붙인 시간이 있었다. 감독 김충길도 그 시간 위에 서있는 거라 믿는다.

백정우·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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