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은 지난 2016년 ‘채식주의자’로 영국 부커상을 수상했다.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린다. 이 중 한강이 수상한 인터내셔널(국제) 부문은 영어로 번역된 비영어권 문학 작품의 작가와 번역가에게 돌아간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부커상 수상작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최근 수상작의 번역서들이 잇따라 출간됐다.
지난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Time Shelter)'는 현대세계에서 탈출을 바라는 이들의 심리를 담아냄으로써 시간과 기억,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때 편안함을 느끼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과거 요법이라는 치료를 제공하는 의사 가우스틴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에 다시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나이나 병의 여부와 무관하게 많은 이를 사로잡고,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데, 저자는 이를 ‘팬데믹’으로 인식한다. 저자는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핑계 삼아 다각도로 유럽의 역사를 조명하고, 동시에 그 속에서 개인이 느낀 기쁨과 환멸을 포착해 보여준다.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은 예니 에르펜베크의 ‘카이로스’다. 21세기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서사적 소설가인 저자는 1980년대 말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역사적 시간을 배경으로 열아홉 살의 카타리나와 쉰 셋 유부남 한스의 특별한 로맨스를 그려낸다. 다소 불편할 수 있는 두 주인공의 관계는 음악과 예술에서 시작해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가는 “결코 다시는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한스는 생각한다. 영원히 이럴 것이라고 카타리나는 생각한다”와 같은 문장을 자주 반복하는데, 이는 마치 동독으로 대표되는 무너지는 구체제의 모습과 닮아있다. 저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자신의 어린 시절은 ‘박물관’이 되었다”며 모두가 ‘해방’으로 이해하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바라보는 작가의 ‘상실감’에 대해 고찰한다. 먼지처럼 처절하게 사라져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사라져가는 자신의 땅, 이웃, 터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