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국내 기업의 밸류업과 자본시장 이슈를 논의할 때 '기업 거버넌스' 문제를 논외로 하기 어려워졌다. 그만큼 중요한 주제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돌아보면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 후진성에 대한 논의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기업의 후진적 기업 거버넌스는 97년 외환위기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지난 27년여 동안 그 문제점과 개선 방안들이 모색되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는 오히려 퇴보했거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기업 거버넌스 개선 노력에는 어떠한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런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환자를 예로 들어 보자. 지속적인 특정 치료와 처방을 받았음에도 오랜 질병이 낫지 않거나 더욱 악화된다면 환자는 그 진단과 처방의 효용성을 원점에서 의심해 봐야 한다. 혹여 진단과 처방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한국 기업 거버넌스 개선방안 논의도 이러한 원점 진단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3회에 걸쳐 이 문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거버넌스(Governance)란 무엇인가? 그것은 권력(힘)의 배분과 그렇게 배분된 권력(힘)에 의한 의사결정 메커니즘에 관한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국가 단위에서 생각해 보자. 만일 특정 국가가 민주적 거버넌스를 갖췄다면 권력의 근원이자 원천은 의당 '국민'이다. 따라서 그 권력은 그 원천인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 국민주권의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구현하기 위한 이념으로서 자유와 평등, 권리와 의무라는 대칭적 가치체계도 정립되었다. 그 실현을 담보하기 위해 대의제, 삼권분립, 법치주의와 같은 제도들도 도입되었다. 이것을 민주적 국가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겠다.
'기업 거버넌스'란 그 범위를 기업으로 좁힌 것이다. 즉 기업과 기업을 둘러싼 권력(힘)이 어떻게 배분되고, 그 배분된 권력에 의해 여하히 의사결정이 이루어짐으로써 민주적 국가에 있어서 '국민'과 같이 그 권력 원천의 주체(들) 이익에 합목적 하느냐가 바로 기업 거버넌스와 관련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 권력의 원천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나라와 대륙마다 달랐다.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영미식의 주주자본주의가 있다. 이 거버넌스는 힘의 원천을 자본 투여자인 주주로 한정한다. 둘째, 독일 등 유럽식의 주주와 노동을 절충한 자본주의가 있다. 이것은 주주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목소리와 이익도 함께 고려한다. 셋째, 일본, 한국과 같은 아시아식 자본주의가 있다. 여기서는 공동체적 가치와 이해관계자 이익을 광범위하게 고려해 왔다.
그러나 위 세 가지 모델 간의 경쟁은 사실상 90년대 후반 판가름 났다. 7,80년대 이래 미국경제가 전세계를 주도하고, 아울러 90년대 골디락스 경제와 그 후반 나스닥의 호황세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앞다퉈 받아들였다. 미국식의 자본시장 기반의 주주가치 지향의 기업 거버넌스 접근방식이 가장 역동적이고 성공적인 스탠다드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주주자본주의는 비상 상황하에서 강요당한 측면이 있다. 즉 앞서 언급했듯 90년대 후반 IMF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거버넌스 관련 제도, 문화, 소유구조, 자본시장 수준 등과의 정합성 여부를 충분히 고려치 않고, IMF로부터 강제된 주주자본주의 거버넌스 제도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같이 개방형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 입장에서 그 요청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
이 무렵, OECD, 세계은행, IMF 등 유수의 국제기구들은 기업 거버넌스의 '단일한 획일적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의 행동은 이율배반적이었다. 그들은 규칙 기반(rule-based)의 각종 기업 거버넌스 코드와 가이드라인들을 앞다퉈 발표했다. 앞서 언급했듯 금융경제학자들이 주도하는 이러한 거버넌스 논의는 90년대 미국 신경제의 성공이 절정에 달했을 때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했다. 전 세계는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로의 수렴현상을 노정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화, 금융화와 맞물려 더더욱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영국을 제외한 여타 지역이나 국가들의 관련한 전통적 문화, 제도, 소유구조, 산업 형태, 사법 시스템 수준 등은 무시되었다. 거버넌스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번영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적 기제임에도 불구하고, 영미식 거버넌스 도입 그 자체가 기업 경영의 목적으로 호도된 측면도 있었다.
90년대 이후 세계화에 편승하여 글로벌 주식시장이 빠르게 발전했다. 그 이전까지는 역사적으로 볼 때, 영미를 제외한 전 세계 대다수 국가들의 일반적인 자본조달 방식은 사업을 통해 축적된 내부 이익잉여금을 통하거나, 은행을 통한 차입에 의존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주식시장에 의존하는 방식보다, 보다 신뢰할 수 있고 비교적 예측 가능한 장기자본 조달방식이었다.
이후 주주자본주의적 거버넌스는 이데올로기화한 측면도 있다. 여타 형태의 거버넌스를 배타시하기도 하였다. 즉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더욱 효율적 효과적이기에 전세계 대다수 국가들의 거버넌스도 이 방식으로 수렴되어야 한다는 논거는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주지하듯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통적인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과연 장기적 관점에서 효율적이며, 형평성 있는 시스템인지에 대한 강력한 의문들이 제기된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비판의 논거는 주주자본주의가 빠지기 쉬운 단기주의(short-termism)의 문제다. 분기성과 내지 반기성과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투자자 중심의 주주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리면 결국 기업 경영자들은 외부화, 공유지 비극, 불공정거래 및 부당 경쟁을 통한 단기 이익 극대화의 늪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장실패(market failure)로 안내하게 되어 있다.
이후 무비판적인 주주자본주의로의 수렴(convergence)에서 각국 문화, 제도, 역사, 맥락, 소유구조, 자본시장 특성 등과 정합적인 거버넌스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속 가능성(ESG) 자본주의도 그 대안의 하나로 유력하게 등장하였다.
필자는 지난 20여년 한국경제와 사회가 각자도생의 사회,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자영업, 중산층 몰락으로 대표되는 양극화의 심화, 결과적으로 잠재성장률 추락, 저출생 심화 등의 원인변수로서 위에서 언급했던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도입이 자리 잡고 있다고 믿는다. 이제 거버넌스 논의도 우리나라의 자본시장 전반, 법적 규제, 기업 규범 및 문화, 산업 특성, 노동시장의 경직성, 원하청 문제 등 한국경제 전반의 특수성 및 맥락과 함께 정합적으로 그 개선방향과 발전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