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필
요한 하리 지음
이지연 옮김
어크로스
인류가 벌여온 ‘비만과의 전쟁’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만 주사 맞으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6개월 만에 체중의 4분의 1을 뺄 수 있다는 비만치료 전문의약품 덕분이다.
당뇨병약으로 쓸 때는 오젬픽, 비만치료제로 사용할 때는 위고비라는 상품명이 붙는 이 의약품에는 ‘기적의 비만치료제’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체중을 줄임으로써 비만‧과체중으로 인한 심혈관질환과 당뇨, 각종 암에 걸릴 가능성까지 낮춰줄 것으로 기대된다.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는 배가 부르다고 알려주는 장 호르몬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의 인공 복제물이다. 인간에게 덜 먹고도 ‘인공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식욕을 억제하고 음식물 섭취를 줄여 체중감소에 이르게 해준다.
영국의 기자 출신 작가인 지은이는 비만과 가공식품, 그리고 체중 감량과 몸에 대한 시각 등 비만치료제를 낳게 한 복잡한 산업적‧심리적‧사회적‧과학적 방정식을 파헤친다. 이를 위해 신약을 개발한 생명과학자, 식품 산업 관계자, 몸에 대한 석학 등 100여 명을 인터뷰하고 과거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정보와 근거를 찾는다. 그 결과 GLP-1 비만치료제가 포만감을 높이는 것과 반대로 현대 식품산업의 지배자인 가공식품이 인위적인 맛내기로 포만감을 줄여 과식과 비만을 유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지은이는 가공식품산업이 급속도로 팽창한 1970년대 이전까지는 서구에서도 세 끼 식사 외에 간식이나 군것질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데 주목한다. 영양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현대 가공식품산업이 영양이 아닌 기분 좋은 맛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소비자를 길들이려고 시도해왔다고 주장한다. 해당 식품을 먹으면 기분이 급속히 좋아지고, 입안에 행복감이 차오르며, 아주 기분 좋은 단맛이 남는 순간인 ‘블리스 포인트(Bliss-Point)’를 이끄는 게 가공식품 인기 비결의 하나다. 이를 위해 주로 과도한 설탕‧지방과 함께 수많은 화학물질을 활용했다. 이 때문에 현대인은 자연식품을 멀리하면서, 먹어도 포만감이 별로 들지 않는 가공식품을 탐식해 비만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이는 미국 뉴욕 마운트시나이 아이칸 의대 신경과 과장인 폴 케니가 쥐를 대상으로 실시한 ‘치즈케이크 놀이동산’ 실험에서도 확인된다. 치즈케이크 등 초가공식품을 맛본 쥐는 굶어죽기 직전 상황이 되기 전에는 영양이 풍부한 일반 사료에 입을 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인간이라고 해서 먹는 양을 줄이고 운동을 좀 한다고 체중이 조절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이 들지 않아 계속 먹게 되고 결국 비만으로 이어지는 초가공 식품의 등장과, ‘날씬함은 미덕이고 비만은 죄악’이라며 다이어트를 개인 의지의 문제로 돌리는 사회문화적 압력이 결합해 비만사회가 출현했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미국 성인의 70%, 유럽 인구의 절반이 과체중을 겪고, 체중 감량 시도의 80%가 실패로 돌아간다는 시대의 근본적인 배경의 하나라는 설명이다. 인위적으로 뇌와 인체 생리 시스템을 속여 포만감을 유발해 체중을 줄이는 감량제의 등장이 문제의 해법이 아닌 이유다.
심지어 어떤 동물실험에서는 설탕 없이 인공감미료만 든 음료수를 섭취했을 때 체중이 오히려 더 늘었다는 보고도 있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인공감미료가 쥐들에게 ‘대사 교란’을 일으킨 것 같다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2003~2011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근무하다 표절 문제 등으로 그만둔 뒤 전문 작가로서 정신건강‧약물중독‧집중력 등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국내에선 집중력을 다룬 『도둑맞은 집중력』(어크로스)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원제 Magic P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