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2024년 12월 중순에 작성했으며,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5년 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울산 현대모비스는 지난 2019~2020시즌 중 에메카 오카포를 대체 외국 선수로 영입했다. 오카포는 시즌 중에 합류했음에도 탁월한 경기력을 뽐냈다. 비록 전성기 시절 NBA를 호령하던 퍼포먼스는 없었으나, 녹슬지 않은 수비력과 돋보이는 경험으로 현대모비스의 골밑을 다졌다.
대학에서
오카포는 어린 시절부터 학업과 운동 모두 두각을 보였다. 휴스턴 출신인 오카포는 아버지의 직장 문제 때문에 오클라호마주로 이사했으나, 텍사스주에 소재한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졸업반일 당시에는 평균 22점 16리바운드 7블록을 책임졌다. 페인트존에서 단연 돋보이는 실력을 뽐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오카포는 고심 끝에 코네티컷대학교로 진학했다. 당초 스탠포드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바랐으나, 농구관련 장학금을 제시받지 못해 코네티컷으로 향한 것.
오카포는 신입생 때부터 코네티컷의 간판급 선수로 활약했다. 함께 한 이들도 대단했다. 벤 고든과 찰리 빌라누이바, 마커스 윌리엄스와 힐튼 암스트롱, 조쉬 분까지. NBA를 오랫동안 누빈 이와 손발을 맞췄다.
대학에서 쌓은 이력도 어마어마하다. 프로 진입 전에 NCAA 전체 블록슛 1위에 올랐고, 빅이스트컨퍼런스 올해의 수비수와 퍼스트팀, 올 해의 선수에 모두 뽑혔다. 이게 다가 아니다. 대학 지도자가 선정하는 올해의 수비수와 올해의 선수까지 휩쓸었다. 차기 NBA 선수다운 면모를 보였다.
백미는 지난 2003~2004시즌이었다. 오카포는 시즌 내내 코네티컷의 핵심으로 맹활약했다. 그리고 코네티컷을 오랜만에 정상으로 견인했다. 파이널포 최우수선수도 당연히 오카포의 몫이었다. 엄청난 실력을 선보인 오카포는 차기 드래프트의 1순위 후보로 관심을 모았다.
학업으로도 두각을 보였다. 코트 밖에서도 솔선수범했다. 재무학을 전공한 오카포는 높은 학점을 받았으며, 조기에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3년 만에 대학교를 졸업한 후, NBA로 향했다. 많은 선수들이 대학을 경유하는 과정으로 거친 것과 달리, 오카포는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NBA에서
오카포가 NBA에 진입할 당시, NBA는 큰 변화를 겪었다. 샬럿 밥캐츠(현 호네츠)가 새롭게 창단한 것. 샬럿이 새롭게 가세하면서, NBA는 지금과 같은 30개 구단 체제를 갖췄다. 이로 인해, 선수들이 향할 관문이 좀 더 넓어졌다.
오카포는 당시 고졸 선수였던 드와이트 하워드와 함께 유력한 1순위 후보로 손꼽혔다. 다만, 어느 구단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할지가 변수였다. 1순위를 차지한 올랜도가 하워드를 택했다. 2순위 지명권을 얻은 샬럿은 오카포를 선발했다. 신생 구단의 부름을 받은 하워드는 곧바로 팀의 얼굴로 부상했다. 코트 밖에서도 성실했던 만큼, 팀을 잘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NBA에서 뛰기 전에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도 나섰다. 당시 미국 대표팀은 팀 던컨과 앨런 아이버슨을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르브론 제임스(현 LA 레이커스)와 카멜로 앤써니 등 NBA에서 첫 시즌을 보낸 이들도 포함됐다. 오카포는 비록 많은 시간을 뛰지 못했으나, 던컨의 백업 빅맨으로서 제 몫을 다했다. 프로 진입에 앞서, 훌륭한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오카포는 NBA에서도 훌륭하게 첫 시즌을 보냈다.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샬럿은 오카포를 도울 전력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전력을 보강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드래프트 운도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오카포는 NBA에서도 수비 존재감을 드러냈다. 경험까지 쌓은 오카포는 견고한 빅맨 수비수로 거듭났다. 그러나 늘지 않은 공격력이 문제였다. 그런 이유로, 그의 가치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가치가 줄어든 오카포는 2009년 여름에 뉴올리언스 호네츠(현 펠리컨스)로 트레이드됐고, 팀을 자주 옮겨야 했다. 부상도 문제였다. 부상에 시달린 오카포는 30대 초반을 통째로 날려야 했다. 무려 네 시즌 동안 뛰지 못했다. 이후 10일 계약 등으로 기회를 엿봤으나, 한계가 있었다. 지난 2017~2018시즌을 끝으로 빅리그를 떠났다.
울산에서
오카포는 NBA 재진입을 위해 NBA G-리그에서도 뛰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없었다. 부상으로 이전과 같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 데다가, 경기 감각을 찾지 못했기 때문. 빅리그에서 자취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오카포는 농구를 향한 미련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2019년 여름에 한국으로 향하게 됐다. 당시 울산 현대모비스가 연습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상대 팀의 외국 선수로 오카포를 불러들인 것. 그때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현 KBL 경기본부장)의 눈에 들었다.
유재학 감독은 당시 오카포의 성실성와 자기 관리 능력을 단연 높이 샀다. 또한, 전 NBA 선수이자 올해의 신인에 선정됐던 오카포였음에도, 오카포는 한국 농구를 폄하하거나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연습 상대로 합류했음에도, 오카포의 경기력은 탄탄했다.
이를 파악했던 현대모비스는 2019~2020시즌 중 오카포를 대체 외국 선수로 낙점했다. 오카포의 프로 선수 경력이 단절됐음에도 불구하고, 오카포는 최선을 다했다. 현대모비스와 인연을 맺은 오카포는 KBL 입성 후 첫 경기부터 더블더블을 작성했다.
특히, 녹슬지 않은 수비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라건아와 브랜든 브라운을 압도했다. 오카포가 상대 빅맨을 잘 묶으면서, 현대모비스는 이점을 누렸다. 그러나 많은 나이와 무뎌진 공격력이 문제였다. 수비로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기는 했으나, 공격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승리를 아쉽게 놓친 경기도 있었다. 유 감독도 당시 아쉬움을 드러냈다.
더 큰 불운은 따로 있었다. 오카포가 현대모비스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오른쪽 무릎 내측인대 파열로 8주 진단을 받은 것. 현대모비스는 결국 외국 선수 교체를 검토해야 했다. 오카포와 한국의 짧은 인연은 이렇게 끝이 났다.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considerate2@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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