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완벽하게 수술해도 재발하는 것이 방광암입니다. 일단 재발 하면 10명 중 7명은 원격 전이로 나타나기 때문에 항암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
이대목동병원에서 만난 조정민 종양내과 교수는 방광암 환자의 치료 여정을 일컬어 '재발과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방광암은 한국인 남성에서 열 번째로 흔한 암이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2년 방광암 진단을 받은 5261명 중 남성은 4197명으로 약 79.8%를 차지했다. 2018년 4683명에 그쳤던 방광암 환자는 5년새 약 12.3% 늘었다. 방광암 환자의 약 25%는 이미 종양이 방광벽의 근육층을 침범한 상태로 발견된다. 의학적으로는 '근육 침습성 방광암'이라고 부르는데, 적극적으로 치료해도 예후가 좋지 못하다.
근육 침습성 방광암은 방광과 함께 골반 내 림프절, 주변 구조물을 전부 들어내는 '근치적 방광절제술'이 원칙이다. 남성은 전립선과 정낭을 포함해 적출하고, 전립선부 요도에 종양이 있거나 전립선을 침범한 경우 요도 절제도 함께 시행한다. 사망률이 약 3%로 명시돼 있을 정도로 고난도 수술이다. 방광과 주변 조직을 적출했다고 해서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실제 근육 침습성 방광암 환자의 절반 정도는 수술 후 2년 이내 전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 교수는 "초기에는 3개월, 이후에는 6개월마다 추적 관찰을 하는데, 공격적인 질환 특성상 검사에서 이상이 없던 환자에서 갑작스러운 뼈 전이가 발견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22년 국내 대학병원 최초로 비뇨기병원을 만든 이대비뇨기병원은 3년 여 만에 방광암 치료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인공방광 재건수술 분야에서 '신의 손'으로 불리는 이동현 이대비뇨기병원장(비뇨의학과 교수)이 버티고 있는 덕이 크다. 이 교수는 "이전에 다른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 난이도가 더 올라간다"며 "합병증 우려로 수술을 선택하지 못했던 환자들이 내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한 해 국내에서 시행되는 근치적 방광 절제술 700건 중 300여 건이 이대목동병원에서 시행될 정도다. 중증 환자 비중이 높은 데도 2000건 이상의 방광절제술을 시행하는 동안 사망 사례는 단 1건도 없었다고 한다.
이대목동병원의 강점은 체계적인 다학제 협진 시스템이다. 비뇨의학과와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등 여러 과가 정기적으로 모여 환자별 치료 전략을 논의하고, 긴급한 사안은 카카오톡 같은 비공식 채널을 활용해 수시로 협의한다. 림프절 전이가 다발성으로 나타났거나 종양이 바깥쪽까지 침범해 다른 병원에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환자라도 선행 항암치료를 거쳐 수술을 진행하는 식이다.
하지만 방광암 치료의 어벤저스도 재발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대부분의 환자는 암이 재발해도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이 교수는 "국소 암이 발생한 경우 환자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증상이 생겼다면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라며 "정기적인 추적 관찰이 필수"라고 당부했다.

불과 몇년 전까지 방광 적출 후 미세한 암세포가 남아있거나 림프절 전이가 확인되면 절망적이었다. 백금 기반 항암제 외에는 방광암 환자에게 시도할 만한 항암요법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항암치료 후 남은 암을 수술로 제거한 뒤 같은 항암제를 다시 투여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마저도 방광암 환자들의 생존기간을 늘리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많았다.
그런데 면역항암제 보조요법이 도입되면서 고위험 환자도 방광 절제술 후 방광암 재발 위험을 낮추고 장기 생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근치적 절제 후 재발 위험이 높은 근육 침습성 방광암 환자 대상으로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를 최대 1년간 투여하고 추적 관찰한 연구 결과, PD-L1 발현율 1% 이상인 환자군의 무질병생존기간(Disease-Free Survival, DFS)은 52.6개월(중앙값)로 집계됐다. DFS는 암치료 후 재발 없이 생존하는 기간이다. 근치적 수술을 했음에도 재발 위험이 매우 높았던 방광암 환자가 옵디보 보조요법을 받으며 평균 4년 4개월 동안 재발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같은 기간 위약을 투여 받은 환자군의 DFS가 8.3개월에 그쳤음을 고려하면 재발 및 사망 위험이 56% 낮아졌다. PD-L1 발현 여부와 관계 없이 전체 환자군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옵디보 단독요법군의 DFS는 25.6개월로, 대조군(8.5개월) 대비 재발 및 사망 위험이 37%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이 연구를 계기로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가이드라인이 개정됐다"며 "현재는 수술 후 림프절 전이가 확인된 환자에도 보조 면역항암치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옵디보 보조요법 허가 직후 PD‑L1 양성으로 확인돼 이대목동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했던 40대 환자는 1년간 무사히 투약을 마친 뒤 현재까지 2년 넘게 재발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대목동병원에서는 비뇨의학과에서 수술 후 2주 안에 PD-L1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적합하다고 판정되는 경우 종양내과에 보조요법을 의뢰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조 교수는 "면역항암제 보조요법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질 않아 환자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해도 1년 약값만 약 3600만 원에 달한다"며 "환자의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보니 첫 질문이 '실손보험 있으세요?'가 되어버렸다"고 토로했다. 면역항암제는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어 1년간 유지할 수 있다. 두 교수는 "순수하게 의학적 판단만으로 치료 방침을 결정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급여 적용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어려운 수술을 이겨내고 새로운 치료법을 통해 10년 가까이 건강을 유지하는 이들을 보면서 치료제 선택이 환자의 삶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 깊이 체감하고 있다"며 "환자들이 비용 때문에 치료 선택을 망설이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