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근로자 제도, 정부가 직접 챙겨야

2025-10-19

얼마 전, 한 결혼이주여성이 상담을 요청해왔다. 베트남의 오빠가 계절근로자로 한국에 왔는데,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버스를 타 농장을 옮겨 다니며 하루 12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한 농장에서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매일 다른 농장, 다른 사장 밑이었다. 임금은 하루 8만 원. 그런데 브로커는 농장주로부터 13만 원을 받고, 5만 원을 가로챘다고 했다. 임금에서 숙박비·전기세·와이파이비, 심지어 산재보험료까지 공제됐고, 일이 없을 때는 숙소에 대기만 시켰고, 휴업수당은 물론 한 푼도 없었다고 한다. 이 여성은 오빠를 한국에 초청하기 위해 이미 360만 원을 브로커에게 냈는데 오빠는 8개월 동안 임금갈취와 착취만 당한 채 돌아갔다고 한다.

관리 소홀 틈 타 브로커 활개

임금 가로채고 산재도 미적용

피해는 결국 농민에게 돌아와

안타깝게도 이런 사례는 전국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농어촌의 많은 지자체는 계절근로 프로그램으로 지역 인력난을 해결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불법 브로커와 위장 알선업체가 깊숙이 개입해 있다. 계절근로자는 원칙적으로 근로계약을 맺은 농장에서만 일을 해야 하고 임금도 고용주로부터 직접 수령해야 하지만, 공공연하게 불법이 자행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 일부 결혼이민 여성들도 직접 브로커가 되거나 이들의 조력자가 되어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계절근로자는 원칙적으로 5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고, 연장 시 최대 8개월까지 한국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이들은 단순히 ‘일시적 체류자’가 아니라, 한국 농촌의 일손을 지탱하는 핵심 인력이다. 농촌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들의 존재 없이는 이미 농사철 인력 공백을 메우기 어렵게 되었다. 그럼에도 제도 밖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싸게 쓰고 버리는 노동력’으로 취급받는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계절근로자 제도는 본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선발하고 관리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농민과 노동자 사이에 브로커가 개입해, 불법 파견 구조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행정 절차가 복잡하고, 지자체가 직접 외국인을 모집·관리하기 어려운 틈을 타 브로커들이 끼어든 것이다. 그들은 “비자를 빨리 받을 수 있다” “좋은 농장으로 보내주겠다”며 본국과 한국 양쪽에서 수수료를 챙긴다. 피해는 결국 농민과 노동자 모두에게 돌아간다.

더 큰 문제는 법적 보호의 공백이다. 계절근로자는 체류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산업재해보험이 적용되지 않거나, 숙소 기준이 부실한 경우도 흔하다.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환경에서 지내는 이들도 있다. 언어 장벽 탓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신고나 구제가 어렵다. 이들은 ‘합법적 체류자’이지만, 실제로는 제도 속의 ‘보이지 않는 노동자’로 남아 있다.

법무부는 최근 계절근로 전문기관을 지정하겠다고 했지만, 핵심은 단순한 ‘기관 지정’이 아니라 브로커 개입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캐나다의 ‘정부협약 기반 모델’이 주목할 만한데 캐나다는 정부가 계절근로자의 모집·입국·관리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하여 민간 브로커의 개입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제도 운영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확보했다.

한국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미 고용허가제를 통해 수십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관리해온 경험이 있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나 농협중앙회 같은 공공기관이 직접 계절근로자 관리 업무를 맡는다면, 효율성과 공정성 모두 담보할 수 있다. 농촌 인력난을 핑계로 불법 구조를 방치하거나, 효율을 내세우거나 전문기관이란 이름으로 브로커에게 길을 터주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미 발 빠른 브로커들이 이른바 전문기관으로 변신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부 지자체는 브로커와의 결탁으로 행정감독이 부실하고, 피해 신고가 들어와도 사실상 방치하는 사례가 드러나기도 한다. 지자체는 계절근로자 배치 및 관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고용노동부·출입국관리사무소와의 협업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근로계약서 작성, 임금 지급내용 확인, 숙소 위생 상태 점검 등은 계절근로자를 선발 배정하는 지차체의 최소한의 의무이다.

계절근로자는 ‘잠시 일하고 돌아가는 외국인’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 농업의 뿌리를 지탱하는 사람들이며, 우리가 매일 먹는 밥상 뒤에서 땀 흘리는 동료이다. 그러나 제도가 방치된 채 그들의 노동이 착취의 사슬로 묶여 있다면, 한국 농업의 미래도 없다. 계절근로자 제도, 사람을 위한 제도로 다시 세워야 한다.

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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