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국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집행된 해외 기업·기관의 투자가 138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에는 투자 금액이 500억 원 이상인 대형 거래도 다수 포함됐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이 같은 해외 자본 유입 현상에 대해 대체적으로 글로벌 고금리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벤처 생태계에 도움을 준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다만 일각에서는국내 산업 기술·데이터가 일부 해외 전략적 투자자(SI)로 유출될 수 있어 촘촘한 방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15일 벤처 투자 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해외 투자는 이달 13일까지 누적 138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통틀어 집계된 134건을 연말이 되기 전 넘어선 것이다. 투자 금액도 지난해 4168억 원에서 올해 6177억 원으로 48.2% 증가했다. 이번 조사는 창업한지 7년이 경과하지 않은 법인을 대상으로 했다. 이에 따라 최근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그룹으로부터 1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지만 법인을 설립한지 약 12년이 경과한 에이블리코퍼레이션 등은 집계 대상에서 제외했다. 해외 기업으로의 인수합병(M&A)도 통계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올 들어 해외 기업·기관으로부터 대형 지분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으로는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 △트웰브랩스 △엠에이치지 △엘디카본 등이 있다.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는 직접 태양광 발전소를 구축하거나 인수해 장기간 보유·운영하는 기업이다. 직접 발전소를 구축·운영해야 하는 만큼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데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 블랙록이 1000억 원의 자금을 댔다. 이재성 대표가 창업해 영상 특화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하는 트웰브랩스는 올해에만 1130억 원을 조달했다. 투자자 다수가 엔비디아 자회사인 엔벤쳐스 등 해외 기관이었다.
국내 벤처 투자 시장은 엔데믹 전환 후 글로벌 고금리 등으로 장기간 위축돼 있다. 벤처기업협회가 455곳의 회원사를 대상으로 최근 조사해 12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다수는 ‘운영 자금 부족(29.6%)’과 ‘초기 자금 조달의 어려움(19.2%)’을 주요 금융 현안으로 꼽았다. 또 응답 기업 10.6%는 내년도 자금 사정이 ‘매우 악화’, 37.1%는 ‘다소 악화’, 31.4%는 ‘동일’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다수가 내년도 금융 조달이 올해보다 어렵거나 비슷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해외 자본의 유입이 생태계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 벤처캐피털(VC) 투자심사역은 “해외 자본 유입으로 유동성이 늘어나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다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AI 스타트업 대표는 “유동성이 더 늘어나야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반등할 수 있다”며 “해외 자본 유입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다만 일부 해외 기업의 전략적 투자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각도 나온다. 한 제조 스타트업 대표는 “플랫폼·커머스 기업 등은 추후 데이터 유출 등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고 본다”며 “투자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업종에 따라서는 산업 데이터·기술을 보호하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