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화장실이 최근 워싱턴 정가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민주당 소속 트랜스젠더 여성 의원이 의사당 여자 화장실을 쓸 수 있느냐를 놓고 공방이 치열했고, 결국 공화당 주도로 사용 금지 조처가 내려졌다. 이 장면은 ‘혐오와 차별’ 논란이 컸던 트럼프 시대가 다시 돌아온 징후면서 동시에 원인이기도 하다. 많은 주류 언론들이 놓치고 있었지만, 트랜스젠더 이슈는 이번 대선을 결정지은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트럼프는 명확하게 외치고 또 외쳤다. “해리스는 세금으로 수감자들이 성전환 수술을 받게 합니다. 아이들도 아무렇게나 수술을 받게 할 겁니다.”
한껏 과장된 주장이었지만, 트랜스젠더의 권익 보호를 강조해온 해리스는 이렇다 할 방어를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전체 선거 광고의 20%에 달하는 3700만 달러(약 505억원) 이상을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룬 TV 광고에 쏟아부었고, 결정적인 슬로건을 내놓았다. “해리스는 그들(트랜스젠더)을 위한 후보입니다. 트럼프는 당신을 위한 대통령입니다.” 해리스 측의 추후 분석에 따르면, 이 광고가 지속해서 노출된 뒤 트럼프 지지율이 2.7% 포인트 더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주장이 먹혀든 까닭은 무엇일까. 해리스가 정치적인 올바름을 좇느라 국민 일반의 보편적 인식을 모른 체했기 때문일 것이다. AP통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5%는 트렌스젠더에 대한 정부 지원이 지나치게 많다고 답했다. 퓨 리서치센터 조사에선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자 스포츠 출전 허용 문제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반대 의견이 48%로 절반에 육박했다. 실제로 선거 현장을 취재해보면 트랜스젠더 문제에 관한 한 해리스의 입장이 급진적이라고 보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적지 않았다.
브라이언 헤어 등이 쓴 진화인류학 저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타자와의 다정한 소통의 능력이 인류가 살아남은 비결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트랜스젠더 문제를 비롯해 인종·이민자 등 소수자 문제에서 관용을 강조한 해리스의 접근법이 더 경쟁력이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노골적으로 부딪히는 정치의 영역에선 비정함이 다정함을 이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같은 책엔 다른 결론도 있다. 어쩌면 트럼프가 압승을 거둔 이번 미국 대선 결과가 이 한 줄에 요약돼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인류)는 지구 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