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두 번째 임기가 다가오면서 미국 내 소수자 정치를 이끄는 ‘투사’ 역할을 자처해 온 흑인 여성들 사이에 무력감이 커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AP통신은 트럼프 당선인 재집권을 기점으로 다양한 시민사회 분야에서 활동해 온 흑인 여성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일선에서 물러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2020년 트럼프 당선인이 처음으로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보다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과거엔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트럼프 당선인의 승리를 ‘우연’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가 다시 압승을 거두자 인종차별·성차별 발언을 쏟아내 온 트럼프 당선인의 주장에 동조하는 여론이 미국 내 주류가 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 탓이다.
유색인종 여성을 위한 옹호단체 ‘겟소셜’을 창립한 테자 스미스는 “지금 상황에서 제정신으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 흑인 여성 유권자들은 다른 유권자들보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요하게 고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AP통신이 대선 당일까지 8일간 실시한 설문조사 ‘AP 보트캐스트’를 보면, 흑인 여성 10명 중 6명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장 중요한 투표 요인으로 꼽았다. 이는 다른 인구 집단에서 같은 응답을 한 비율보다 높다. 흑인 여성 약 90%는 이번 선거에서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승리가 확정된 이후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흑인여성은쉬어야한다(Blackwomenrest)’ ‘휴식이저항이다(rest is resistance)’ 등의 문구를 적은 게시물이 확산하기도 했다. 영상은 흑인 여성들에게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일단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흑인 여성은 미국 정치사의 주요 기점이 된 각종 사회운동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 온 집단으로 꼽힌다. 이들이 1960년대 흑인 참정권 운동부터 2018년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 2020년 플로이드 사망 이후 미국 전역에 번진 인종차별 규탄 시위 등을 이끌어왔다고 뉴욕타임스는 평가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의 두 번째 집권으로 휴식기를 갖겠다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정치 역학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영리단체 ‘블랙보터스매터’를 창립한 라토샤 브라운은 “미국은 이제 스스로를 구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흑인 여성들)는 헤라클레스가 아니고, 그런 타이틀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는 나라를 위해 순교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AP통신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