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연말, K장로에게서 배운 지혜

2024-12-29

사람은 언제까지 배우는 걸까. 태어나자마자 엄마 젖꼭지를 찾는 흡입 반사로부터 시작해 배움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나이에 따라 맹렬하게 새로운 것을 습득해야하는 시기가 있기는 하지만, 배움은 인생 모든 과정을 따라 계속된다.

그때 그때 배움의 질과 양, 종류는 달라 지지만 나이 들수록 배움이 더 진해지고 깊어 지는 것 같다. 한해가 바뀔 때는 더 많이 생각하고, 느끼고, 배우는 시기다. 배움은 자연을 통해서도 사람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K장로와는 매주 세 번 정도 만나 탁구를 친다. 6~7명이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이 게임을 즐기는 모임에서다.

87세인 그는 그룹에서 가장 연장자다. 풍채가 좋고 체력이 좋아서 가장 오랜 시간 탁구를 친다. 그 나이에는 매주 3차례 두 시간씩 이상 운동하기에는 힘들텐데도 그는 여전히 활기가 넘친다.

그는 오후에도 가끔 탁구장에 온다. 같은 모임에서 탁구를 즐기다 누군가와 마음이 상해 다른 시간에 탁구장에 온 외톨이 회원이 있다. 그는 그 사람을 위해 그 시간에 와서 상대해준다,

탁구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 운동이라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 그룹을 만들기가 쉽지않다. 실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낯선 그룹과 어울려 치기도 쉽지 않다.

K장로는 마치 미국 대학의 파티에서 혼자 있는 외톨이들을 상대해주는 ‘소셜 버터플라이’들처럼 모임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다른 그룹에 적응할 때까지 상대해준다. 오랫동안 그를 봐왔지만 한 번도 화난 모습을 본적이 없다. 금방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부처상이다. 교회의 장로인 그에게서 부처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죄송스럽지만 교회의 일반적 가치도 세속과 크게 다르진 않으리라.

탁구가 끝나면 오후 1시다, 근처에 있는 맥도널드에 다 같이 간다. 커피와 음료수, 감자튀김, ‘맥더블’이라는 2개 4달러 하는 햄버거를 시킨다. 소시지 패티 2개, 치즈, 절인 오이 조금 들어간 게 전부인 일 년 내내 세일하는 햄버거다. 그는 그 햄버거를 큰 소다와 함께 누구보다 맛있게 먹는다. 어떤 때는 아침 운동팀들과도 그 메뉴를 아침으로 먹었다고 한다. 의사들이 들으면 기겁할 일이지만 그는 젊은 일행들보다 더 건강하다.

그는 오래전 이민와서 미국 방송국에서 근무하다 은퇴했다. 그 후 초기 OC 장로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여러 비영리단체에서도 봉사하며 상도 많이 받았다.

최근까지도 은퇴 장로들과 모임을 만들어 매주 양로 호텔을 방문해 찬양 봉사활동을 했다. 얼마 전 그는 “양로호텔 측에서 나이가 너무 많으니 그만 오시라고 해 이제 못 간다”고 너털 웃으셨다.

풀러턴에 있는 랄프스 파크에는 매일 오전 8시에 넓은 잔디 위에서 한인 등 60여 명이 모여 체조 등 운동을 한다. 리더들의 영어 구령에 따라 40여 분간 열심히 운동한다. 그는 여기서도 10여 년째 리더 중의 한 사람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의 유일한 신체적 결함은 보청기를 낀다는 것이다. 그가 만나는 사람이 다 좋은 사람은 아니어서 어떤 사람은 듣기 좀 거북한 소리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도 그는 그냥 웃으며 넘긴다. 안 들리는지, 듣고도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화를 내는 것을 본적이 없다. 가볍게 던지는 언짢은 말 정도는 그냥 웃어넘기는 지혜를 터득한 것 같다.

요즘 세상이 내 것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남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않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고개를 더 돌려보면 우리 곁에 보이는 특별한 사람의 삶에 내 삶을 비교해 보는 것도 한해를 보내면서 해볼 만한 일이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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