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 16강전〉 ○ 커제 9단 ● 신진서 9단

장면⑩=커제 9단이 백1로 민다. 중앙 집을 지으려는 걸까. 아니다. 그는 이미 중대 결심을 했다. 신진서 9단은 무심한 듯 흑2로 나간다. 단수에 몰릴 수는 없으므로 일단 나간다. 커제는 백3과 5로 축을 몰 듯 다그친다. 중앙에 백의 몇 집이 생기고 있지만 이게 목적은 아니다. 흑6 때 백7, 이 수가 하이라이트다. 흑A면 백 일곱 점이 잡히지만 커제의 목표는 하변이다. 좋은 승부수다. 하나 나중에 보니 이 승부수에 한가지가 빠졌다. 그야말로 천려일실이다.

◆AI의 수순=AI는 백1의 치중이 한발 먼저라고 말한다. 백1이 놓이면 두 집이 없는 흑은 2로 달아나야 한다. 그때 백3으로 막고 흑4로 재차 달아나면 백5, 7로 중앙을 틀어막는다. 이 그림은 백A의 이득을 남긴 만큼 백이 벌었다. 이랬으면 백이 1집반 우세했다.

◆실전 진행=실전에서 신진서는 흑1로 조용히 살았다. 이런 삶은 무릎 꿇고 사는 것이라 하여 다 싫어한다. 한데 이 바둑에서는 이 삶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어려운 고비를 다 넘기고 278수에 이르는 긴 마무리 끝에 신진서는 반집승을 거뒀다. 8강에 올랐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