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및 디지털, 바이오 의료 기술의 혁명이 가져온 급진적 사회 변화로 오늘날 철학은 큰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동안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해온 철학은 새로운 문명 시대에 접어든 지금 그 진가를 계속 발휘할 것입니다.”
세계 철학계를 이끌게 된 김혜숙 신임 국제철학연맹 회장은 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제철학연맹은 철학이 우리 시대 현실과 소통하게 하고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이슈에 참여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1948년 설립된 국제철학연맹은 세계 130여 회원국과 150여 개 회원 학회를 보유한 세계 최고의 철학 분야 비정부 국제기구다. 국제철학연맹은 5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 철학자들의 모임이자 ‘철학자들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철학자대회를 주최한다.
김 회장은 40년간 수행한 철학 연구의 전문성과 국제적 리더십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국제철학연맹은 지난달 차기 회장 지명자 3명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했고 김 회장은 과반수 득표로 회장에 선출됐다. 국제철학연맹 회장에 아시아 출신 철학자가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기는 2028년까지다.
제16대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 회장은 이화여대에서 영문학 학사와 철학 석·박사, 미국 시카고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87년부터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칸트철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해석을 시도했다. 2007년 한국분석철학회장과 2012~2013년 한국철학회장, 2009~2011년 한국상호문화철학회장, 2012~2014년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했다. 2017년에는 이화여대 개교 131년 만에 처음으로 직선제 총장에 당선됐다.
그는 국제철학연맹 회장으로 선출된 것에 대해 “그동안 연맹은 서구, 특히 유럽이 중심이 돼왔다”면서 “이번에 내가 선출된 것은 동양철학이 이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개인적인 영광일 뿐 아니라 아시아 철학계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철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지만 어렵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철학은 결코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다. 그에게 철학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느냐고 묻자 “우리의 일상생활 자체가 바로 철학이고, 누구나 삶 속에서 철학을 한다”고 답했다.
김 회장은 “철학은 사고(思考)의 실험인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뭘 할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등 많은 생각을 하고 또 고민한다”며 “과거에도 인간은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왜 사람은 음식을 먹어야만 하는가?’ 등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고 이는 과학으로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철학자는 우주의 탄생을 궁금해 하고 음식과 건강의 관계에 의문을 던졌으며, 과학자들은 ‘빅뱅’으로 우주가 생겨났고 음식에는 우리 몸을 지탱하는 많은 영양소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철학은 곧 과학이고 인류 문명 발전에 철학이 항상 함께했다는 지론을 가진 김 회장은 앞으로 철학 연구 및 교육 방법에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 기대된다고 했다. 그는 “AI·디지털 등 새로운 문명 시대가 지금 시작됐는데 철학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며 “그동안 우리가 살았던 세계는 지금의 현실뿐이었지만 이제는 가상현실을 비롯해 다양한 세계가 출연했으니 세계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확장된 세계만큼 철학 역시 현실 세계를 넘어 AI 등을 고민해야 하는 등 새로운 도전의 길에 서게 됐다”면서 “AI·디지털 시대를 맞아 인간은 더 많은 생각과 의문·고민을 던져야 하니 철학도 새롭게 출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동양철학의 세계화 또한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세계 철학계는 그동안 서양철학이 중심이었고 동양철학은 변방의 느낌이 들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다”면서 “이번에 아시아에서 첫 국제철학연맹 회장이 나오고 또 2028년에는 세계철학자대회가 일본 도쿄에서 열리게 돼 동양철학이 한층 세계 무대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됐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 회장은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향해 조언도 건넸다. 그는 “철학을 만학의 제왕이라고도 하는데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도는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철학적 사고로 무장하면 우리 사회에 난무하는 궤변·가짜뉴스 등도 구별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누구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대로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지금 철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스스로를 똑똑하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철학을 공부하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