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딸에게 부끄러운 2024 겨울

2024-12-09

사랑스러운 내 딸 하진이에게.

하진아, 먼 훗날 내게 2024년은 너를 만난, 기적과 축복만이 가득한 한 해로 기억될 예정이었어. 그런데 너와 내가 살아갈 이 대한민국의 2024년은 딱 한 달을 남겨놓고 시궁창 같은 현실로 변해버렸어. 옹알이를 시작하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나날들인데, 요 며칠은 울화통이 터진다. 다행인가 싶기도 해. 하진이가 엄마 아빠를 보며 해맑게 웃는 게 세상의 전부인 갓난아기라는 사실이. 너에게 보여주기엔 지금 현실은 위헌과 위법, 위선으로 가득 찬 부끄러운 세계거든.

아빠가 태어났을 때도 대통령은 불법 쿠데타로 집권한 사람이었는데, 네가 태어났을 때도 대통령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이라는 내란을 일으켰구나.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또 한 번 실감하는 요즘이다.

하진아, 나중에 초등학교에서 반장이 친구들을 괴롭히는 나쁜 애면 그 아이를 끌어내리는 투표에 꼭 참여해, 알겠지? 투표 안 하면 너도 그 반장과 같은 일당으로 몰릴 수 있거든. 지금 국민의힘 국회의원 아저씨 아줌마들은 대통령 아저씨가 저지른 비상계엄은 위헌이라면서도 탄핵 투표는 거부했어. 저들은 계엄해제 표결에도 108명 중 90명이나 불참했어. 다른 당의 발 빠른 대처로 민주주의를 지켜놓고 이제는 내란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막아내지 않은 혹은 못한 총리와 집권 여당 대표가 함께 국정 운영을 하겠대. 헌법에 이런 건 쓰여 있지도 않는데. 이런 운영을 해도 여전히 군 통수권자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에게 있는 거거든. 그가 여전히 군 통수권을 갖고 있는 한, 계엄의 공포는 여전히 살아있는 셈이야. 위헌을 위헌으로 대처하는 사람들이구나.

하진아, 네가 언젠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올 날이 오겠지? 그날이 부디 하루라도 늦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이런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첫째, 뱀의 혀처럼 이랬다저랬다 말 바꾸는 남자는 절대 만나면 안 돼. 가령 “비상계엄 선포는 위법·위헌, 국민과 함께 막겠다”더니 하루 만에 “윤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바꾸는 남자. 또 그다음 날엔 “윤 대통령 조속한 집무정지 필요, 극단적 행동 재현 우려”라고 말하더니 결국은 탄핵을 막아서더구나. 그런 남자가 이끄는 정당 때문에 다시 한 번 계엄령이 선포될지도 모르는 공포가 온 국민을 덮치고 있어.

둘째, 언뜻 듣기엔 그럴듯한데, 자세히 뜯어보면 있을 수 없는 모순적인 말을 늘어놓는 남자. 예를 들면 ‘질서 있는 조기 퇴진’ 같은? 탄핵을 막아보겠다고 맘에도 없는 사과하는 척하는 대통령을 조기에 퇴진시킬 수 있는 방법은 탄핵밖에 없는데, 탄핵을 부결시켜놓고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시키겠대. 대통령은 하야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이는데, 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어. 그에게 아마 ‘질서 있는’이란 수식어의 의미는 아마 자기가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클 때를 말하겠지? 현재 지지율 1위 아저씨가 대법원 확정 판결로 피선거권이 박탈될 때. 그때를 기다렸다가 그때서야 탄핵 투표에 참가하려는지도 모르겠어.

하진아, 저들은 정말 염치도 없어. 내란죄 혐의를 받고 있는 대통령은 탈당도 못 시키면서 차기 대선은 이기고 싶나 봐. 아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상인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자를 계속 대통령 자리에 계속 둘수록 자기들이 정권을 다시 잡을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할 거라는 걸 정말 모르나 봐. 정말 바보 같다, 그치?

걱정하지 마, 딸. 우리 하진이 첫 생일이 돌아오는 내년 4월 전까진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든 지금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거야. 이를 위해 아빠도 다음 주부턴 거리로 나가보려고 해. 우리 하진이도 곰돌이 패딩 입고 아빠랑 같이 나갈래? 너도 엄연히 주권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남정훈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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