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당시에는)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하는 게 도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저 국민에게 큰 상처만 남긴 채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진 게 아닌가 싶어요. 이런 일이 무려 2024년 대한민국 땅에서 다시 일어났단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고 참담했습니다.”
10일 김귀삼(69) 예비역 중사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일 났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민 모두에게 악몽과도 같았던 3일 밤이었지만, 이날 김 씨가 받은 충격은 유독 컸다. 스스로가 45년 전 12·12 군사반란을 비롯해 부마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광주 출신인 김 씨는 5·18 당시 시민군이었던 친형제들과 대치하는 기구한 운명을 겪고 이후 30여년 간 연락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객지 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43년만에 계엄군으로서는 처음으로 피해자들에게 공개 사죄하며 조금이나마 역사 앞에 부끄러움을 덜었다.
김 씨는 군대를 내세워 호가호위하려 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그 일당의 모습이 40년 전 신군부와 하나 다를 것 없다며 개탄했다. 그는 전날 김현태 707특임단장이 대중 앞에서 ‘부대원들은 김 전 장관에 이용당한 피해자’라는 취지로 말한 것을 거론하며 “짧지만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라며 “군인은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고, 특히 계엄 시엔 항명할 경우 더욱 중하게 처벌받는 만큼 부당한 명령에도 우선 출동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12·3 계엄 현장에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군인들이 4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김 씨는 “(3일 당시) 국회 현장을 실시간 방송으로 지켜봤는데 군인들이 최대한 무력을 자제하는 것으로 보였다”며 “40년 전 우리가 사람이 눈에 띄기만 해도 다짜고짜 몽둥이로 때렸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과 달리 똑똑하고 세상 물정을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3일 밤 국회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특전사라곤 보기 어려울 만큼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대원 대다수가 일단 명령에 따르긴 했지만 부당함을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어느 시민이 계엄군에게 “여러분이 들고 있는 총은 국민들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사용해 달라”고 말하자 한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영상이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하기도 했다.
김 씨는 신원 기밀이라는 원칙을 깨고 시민들 앞에 서서 용서를 구한 김현태 707특임단장의 용기도 칭찬했다. 김 씨는 “군이 ‘국민을 위한 군’이 됐다는 인상을 받았다”라며 “나도 저런 지휘관을 만났다면 조금이나마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군이 이번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더욱더 국민을 위한 군으로 거듭나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군인은 국토와 국민을 보호하는 영광스러운 직업”이라며 “부디 40년 전 계엄군이 그랬듯 정치인에게 이용당하거나 국민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로 남아선 안 된다”고 거듭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