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저녁 군 고위인사로부터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일 밤 계엄 발표 직후 국방부 간부들을 불러 모아 놓고는 ‘계엄령에 따르지 않으면 항명’이라며 동조하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았다고 했다. 지인은 “결과적으로 계엄이 시행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안 된다며 명령에 따르지 않은 이가 한 명도 없었다는 건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군 수뇌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게다.
윤석열 대통령이 꺼내 든 비상계엄 카드가 무위로 돌아간 데는 MZ(밀레니얼+Z)세대 계엄군이 있었다. 납득할 수 없는 명령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며 나름의 저항을 펼친 덕분에 지난 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의 본회의 가결을 도왔다. 장병들이 (비상계엄에 대해) 의심하고 고민한 시간이 사태 수습의 전환점이 됐다는 얘기다. 국회 본청 건물에 투입됐다가 철수하던 한 무장 계엄군이 “죄송합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표결한 7일 국회의사당 앞에는 수많은 시민이 운집했다. 집회 참가자 중에는 2030 젊은이가 상당수였다. 이들은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선 로제의 ‘아파트’를 부르며 시위를 주도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K팝·뮤지컬 가사나 게임 홍보 문구 등을 변형해 재치 있는 팻말을 써왔다. 노동운동 현장에서 등장하던 과격한 깃발도 시민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한 것으로 대체됐다. 당연히 우려할 만한 폭력사태나 충돌은 없었다. 시위 주도 세력이 과거 운동권에서 MZ세대로 바뀌면서 나타난 변화상이다.
미국은 계엄 직후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도상연습(TTX)을 무기한 연기했다. 자신들에게 언질 없이 내려진 계엄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속할 것이라며 신뢰를 보냈다. 외신에 따르면 새뮤얼 퍼파로 미 인도태평양사령관은 7일 캘리포니아주 레이건 기념 도서관에서 열린 안보포럼에서 “안보관점에서 한국은 안정적이고, 시민과 군의 관계를 보더라도 안정적이라고 확신한다. 정치적 측면에서 일부 불안정성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MZ세대가 한국 민주주의의 파수꾼으로 부상한 덕택이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박병진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