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 깊은 곳서 자라는 '침묵의 킬러'…생존율 15% '최악 암'

2025-11-21

정소연의 즐거운 건강

지난달 병원 안팎에서 핑크색이 많이 보였다면 이번 달엔 보라색이다. 각각 유방암·췌장암을 상징한다. 세계 췌장암의 달인 이달 20일 국립암센터도 기념식을 했다.

췌장암은 다른 암에 비해 발생률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생존율이 매우 낮고 조기 발견이 어려운 암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남자 주인공이 걸린 암도 췌장암이다. 상당수의 환자가 증상이 거의 없는 상태로 진단되거나, 유증상으로 발견되는 경우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진단되기 때문에 ‘침묵의 살인자’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십이지장·비장과 인접, 전이도 빨라

췌장암, 왜 이렇게 위험할까. 소화 효소를 분비하고 혈당 조절 호르몬인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은 위 뒤쪽에 위치하며 십이지장과 연결되고, 비장(지라)과 인접하여 복부 깊숙한 곳에 있다. 종양이 자란다 해도 쉽게 발견되기 어려운 위치다. 췌장암은 주변 장기와 혈관으로 빠르게 침윤하는 특징이 있어 진단 시 이미 수술이 어렵거나 전이가 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췌장암 발생은 우리나라가 고령화되면서 점차 증가하고 있고, 연령을 보정하더라도 증가 추세가 가파르다. 5년 생존율은 조금 호전이 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15% 남짓으로 낮게 보고되어 있고, 조기 발견이 사실상 생존율을 좌우하지만, 조기진단을 위한 정기적 선별 검사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췌장암이 잘 발생할까. 현재까지 알려진 췌장암의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는 담배다. 흡연할 경우 췌장암의 상대 위험도가 2~5배로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췌장암의 3분의 1가량이 흡연으로 인한 것이며 비흡연자보다 흡연자의 췌장암 발생 위험도가 1.7배라고 한다. 담배를 끊어도 10년 이상이 지나야 췌장암에 걸릴 위험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만큼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 췌장염도 췌장암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만성 췌장염은 정상 췌장 세포들이 염증을 앓는 가운데 섬유조직으로 변해가면서 췌장 전체가 매우 딱딱해져 기능을 잃게 되는 병으로, 처음부터 만성형으로 발병하기도 하고 반복적인 급성 염증이 만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만성 췌장염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음주다. 많은 음주자가 흡연도 즐긴다는 점에서 술보단 흡연 영향이 크다는 논란도 있지만, 음주와 췌장암이 적어도 간접적으로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식이 습관도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 과도한 육류나 지방, 탄수화물 섭취와 이로 인한 과다한 열량 및 높은 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 BMI)가 췌장암의 위험도를 높이지만 신선한 과일과 채소류, 비타민 등은 위험도를 낮추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되었다. 그 외, 고령·당뇨·비만·가족력 등도 연관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췌장암은 대개 뚜렷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지만, 그래도 복부 통증(명치의 통증이 가장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등으로 뻗치는 방사통이 동반되기도 함), 황달 (특히 눈의 흰자위), 뚜렷한 이유 없는 체중 감소, 식욕 감소 및 소화 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다만 다른 질환에서도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 미리 췌장암이라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그렇더라도 증상이 계속된다면 우선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다.

췌장암 검사는 복부 CT 나 MRI를 검사를 통해 종양의 여부, 위치, 크기 및 전이 여부를 평가할 수 있고 그 외 EUS(내시경초음파), 피검사를 통해 혈액표지자 CA 19-9 검사, PET-CT 등의 추가 검사를 할 수 있다. 일반인 대상 정기 검진 권고 기준은 뚜렷하지 않으나 위험군(가족력, 유전 변이, 만성 췌장염 등)에 해당한다면 전문의 상담 후 추적 검사를 고려할 수 있다.

복통·황달 증상가족력 있다면 정기검사를

췌장암을 예방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완벽히 예방할 방법은 없지만, 위험요인을 줄이기 위한 생활 습관 개선은 도움이 될 것이다. ①담배를 피우지 말고 남이 피우는 담배 연기도 피하는 것이 좋다. 흡연자가 췌장암에 걸릴 확률은 비흡연자의 1.7배 이상이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②건강한 식생활과 적절한 운동으로 알맞은 체중을 유지하자. 육류 중심의 고지방, 고칼로리 식단을 피하고 식물성 단백질과 과일, 채소 섭취를 늘려가자. ③당뇨 환자의 경우 적극적으로 관리, 치료를 받고 개선된 식이요법을 유지하자. 또한 만성 췌장염도 췌장암 발생 위험도를 높이므로 적절한 치료를 받자. ④과음은 췌장염 위험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췌장암 위험을 높이므로 금주 생활을 하도록 하자. ⑤췌장암 가족력이나 관련 유전자 위험군의 경우 전문 의료진과의 진료를 통해 정기검사를 받도록 하자.

췌장암은 분명 두려운 암이다. 그러나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 췌장암이라는 질환을 제대로 이해하고 위험을 낮추는 선택을 하면 된다. 조기 발견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자신의 증상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건강한 변화를 실천하는 것이다. ‘췌장암의 달’인 이달, 나와 주변에 췌장암 환자가 없더라도 자신과 가족의 췌장 건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조용히 다가올 수 있는 췌장암, 인식하고 대비하는 것에서 예방은 시작된다.

정소연 국립암센터 유방암외과 전문의. 국립암센터 유방암외과 전문의로 유방암 환자 수술 및 치료에 15년 이상의 임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국립암센터 암생존자통합지지실장을 거쳐 현재 암진료향상연구과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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