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퇴직연금 사업에 강하게 힘을 주고 있다.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연금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가 커지고 있어서다. 투자은행(IB), 홀세일(법인 영업), 리테일(소비자 금융) 등 기존 영업 범위 외에서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증권사 전략과도 부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사들은 연말을 맞아 퇴직연금 관련 조직 개편에 나서고 있어 내년부터는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등이 퇴직연금 사업 확대를 겨냥한 조직개편을 진행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기존 1부, 2부 등 두 개 부서로 운영되고 있던 연금 부문을 연금혁신부문, 연금RM1부문, 연금RM2부문, 연금RM3부문으로 확대했다. 연금제도 변화 등 시장환경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한투증권은 퇴직연금본부를 퇴직연금1본부, 2본부 등으로 확대하고 산하 연금영업부도 기존 5곳에서 8곳으로 늘렸다. 삼성증권은 디지털이 강조되는 추세에 맞춰 조직개편에서 퇴직연금본부를 자산관리부문에서 디지털 부문으로 이관했다. 현대차증권은 리테일(개인금융) 본부 산하에 연금사업실을 신설했다. 기존엔 홀세일본부의 연금사업실을 뒀지만 리테일과 연금사업실의 협업이 필수라는 판단에 리테일 본부 산하로 통합했다. 올해 5월부터 퇴직연금 사업 추진 TF(태스크포스)를 가동해 온 키움증권은 자산관리(WM)부문 산하 본부로 이를 배치해 정규 조직화할 예정이다.
증권사들의 퇴직연금 사업 강화 흐름은 지난해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 옵션), 올해 10월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 도입으로 가속화했다. 디폴트 옵션은 근로자가 본인의 퇴직연금을 운용할 금융 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해둔 운용 방법으로 적립금을 자동 운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실물 이전은 다른 금융사로 이전할 때 포트폴리오 그대로 다른 금융사로 옮길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은행 외 증권사, 보험사로도 원활한 퇴직 자금 이동 통로가 만들어졌다.
증권사들은 높은 수익률을 내세워 투자자들을 유인하는 중이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올 3분기 퇴직연금 적립금은 400조793억원에 달한다. 이 중 은행이 210조원(52.6%)으로 적립금이 가장 많았고, 증권 96조5328억원(24.1%), 보험 93조2654억원(23.3%)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 연간 수익률은 7.11%로 은행(4.87%)과 보험(4.50%) 업종의 수익률을 웃돌았다.
인공지능(AI) 기반 로보어드바이저(RA) 투자 일임 서비스 출시로 퇴직연금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RA 일임 서비스는 알고리즘을 활용해 투자자의 투자 성향을 토대로 자산 관리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미래에셋증권은 계열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 RA 전문 운용사들과 협력하며 서비스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투증권은 한국투자신탁운용, RA 전문 운용사들과 협약을 맺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삼성증권도 자체 알고리즘 기반 RA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증권사들은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기다리는 상태다. 현재는 RA 기반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자문형 서비스만 할 수 있지만, 당국 심사를 통과하면 개인형퇴직연금(IRP)을 대상으로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매매도 가능해진다.
다만 퇴직연금 사업 강화 이면에는 최근 증권사들이 IB 등 전통 업무에서 신규 수익을 발굴하기 어려운 환경도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존 주식발행시장(ECM), 채권발행시장(DCM),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 괜찮은 딜을 발굴하긴 어렵고, 최근 주목하던 인수 금융도 당국 경계가 커서 새 수익원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며 "영업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증권사로썬 연금 사업 확대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