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권 인권탄압엔 침묵, 트럼프엔 분노…혁명가 두 얼굴

2025-10-17

[남윤호의 아메리칸 오디세이] 화석화된 미국 좌파 상징 앤절라 데이비스

죽음 앞의 애도조차 진영 논리를 따르는 시대다. 청년 보수 운동가 찰리 커크가 암살됐을 때 극명히 드러난 바다. 우파의 애도와 좌파의 조롱은 감정적 내전 상태로 치달았다.

커크 암살 보름 뒤인 지난 9월 25일, 이번엔 좌파가 일제히 애도 모드에 들어갔다. 연방수사국(FBI)의 첫 여성 테러리스트 수배자 아사타 샤커가 사망해서다. 그는 1970년대 무장단체 흑인해방군(BLA)의 조직원이었다. BLA는 혁명자금 조달을 명분으로 은행을 털었는데, 샤커도 몇 차례 연루됐다. 그러다 1973년 뉴저지에서 경찰관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복역 2년 만에 탈옥한 뒤 1984년 쿠바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카스트로 정권이 그를 사회주의 혁명가로 치켜세우며 망명객으로 받아준 것이다. 못마땅히 여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샤커의 본명(조앤 체시마드)을 적시하며 “경관 살해범을 송환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그는 아바나에서 78세로 생을 마쳤다. 2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채.

좌파에게 샤커는 국가폭력의 희생자쯤으로 각인돼 있다. 흑인·여성·사회주의자라는 삼박자가 피해자 의식을 자극하는 좌파 취향에 잘 맞는 듯하다. 그가 관여한 무장강도나 경관 살인은 정당한 투쟁으로 본다.

앞서 의회의 커크 추모 결의안에 민주당 의원 58명이 반대표를 던졌는데, 이 중 3명이 샤커의 죽음을 애도했다. 서머 리(피츠버그), 아이아나 프레슬리(보스턴), 이베트 클라크(뉴욕) 하원의원으로 셋 다 흑인 여성이다. 이들은 샤커의 슬로건을 인용해 “우리가 잃을 건 오직 사슬뿐”이라고 SNS에 게시했다. 원전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다. 권력의 중심에 선 현직 의원이 사슬에 묶인 프롤레타리아 코스프레를 태연히 한다. 좌파엔 위선으로 밑간이 돼 있는 이들이 유난히 많다.

좌파 테러범 샤커는 추모, 커크 암살은 조롱

흑인 운동단체 BLM(흑인 목숨이 소중하다)이 빠지면 섭섭하다. BLM의 추모사엔 이런 표현이 있다. “그의 말은 우리의 길잡이요, 그의 비전은 우리의 나침반이며, 그의 이름은 우리가 미래를 향해 치켜든 깃발이다.” 거의 성녀 대우다. 15세기 프랑스군의 잔다르크 추모사를 보는 듯하지 않나. 그 외에 수많은 흑인단체, 노조, 개념 연예인, 진보 호소인들이 앞다퉈 추모사를 발표했다. 시카고 교원노조(CTU)는 공식 SNS에 이를 게시해 보수층의 반발을 샀다. 정치폭력이 잇따르는데도 애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앞장서서 테러리스트를 미화했기 때문이다.

토론에 매진하던 커크를 비난하고, 폭력으로 세상 뒤집으려던 샤커를 추모하는 게 그들이다. 강철 같은 진영논리 앞에 대오 이탈이란 없다. 우파의 반응 역시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보수 매체 아메리칸 스펙테이터는 좌파의 추모를 비난하며 ‘지옥불에 떨어져라, 조앤 체시마드’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달았다. 좌우 진영의 간극은, 은하계가 하나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벌어졌다.

급진 테러리스트에 대한 좌파의 동정과 지지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인권 운동가이자 페미니즘의 거두로 추앙받는 앤절라 데이비스(81)의 샤커 지지는 유명하다. 그는 체포된 샤커를 정치범, 자유의 전사로 불렀다. 경관 살해 혐의에 대해선 눈 감았다.

데이비스가 누구인가. 1960~70년대 좌파 학생운동의 이론적 지주였던 허버트 마르쿠제(1898~1979)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젊은 시절 그는 자본주의 타도를 부르짖는 좌경 모험주의자에 가까웠다. 1960년대 후반 UCLA 조교수 시절 미국 공산당에 가입했다. 1969년 로널드 레이건(1911~2004)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공산당원의 교수직 해임을 요구했는데, 이게 오히려 데이비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검열의 희생자이자 저항의 상징이라는 프레임 덕이다.

1970년 8월엔 캘리포니아 마린 카운티 법원의 무장 인질극에 연루된다. 흑인 수감자들을 탈출시키려는 과격분자의 범행이었는데, 판사 등 4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이때 사용된 총기 4정이 데이비스 것이었다. 그에겐 납치, 살인공모, 불법 무기소지 혐의가 붙여졌다. FBI의 10대 수배자 리스트에 오른 그는 두 달 뒤 뉴욕에서 체포된다.

그러자 소련·동독·쿠바 등 공산권이 두루 구명운동에 나섰다. 이 사건을 인종갈등으로 연결시켜 미국을 비난할 절호의 선전 기회로 본 것이다. 크렘린은 전국의 학교, 청년조직, 예술가 단체, 여성조직을 통해 데이비스에게 편지 보내기 캠페인을 벌였다. 그렇게 모은 200만여 통의 편지가 미국 공산당에 전달됐다. 애절한 내용들은 국영매체 프라우다에 소개됐다.

이때 반체제 활동가 안드레이 사하로프(1921~89)도 닉슨 대통령에게 데이비스를 사면해달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당시 소련에서 여객기 납치 혐의로 체포된 유태인들과 데이비스를 병치시켜 인권 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해서였다. 사하로프는 197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후 더 심한 감시와 탄압을 받게 된다. 서방 지식인들이 연대해 소련에 항의했는데, 데이비스가 참여한 흔적은 없다.

데이비스가 1972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자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선 대규모 축하집회가 열렸다. ‘앤절라, 우리의 동지(Angela, our comrade!)’가 울려 퍼졌다. 그는 소련을 방문해 감사를 표했고, 레닌 평화훈장을 받았다. 귀국길에 동독을 경유한 그는 베를린 장벽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 돌아가면 이 분계선의 진정한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알리겠다. 제국주의 세력에 맞선 투쟁에 우리의 몫을 보태려 한다.” 공산당 선전요원 뺨친다. 크렘린이 바라던 게 바로 이것 아니겠나.

그의 두 얼굴이 드러나는 데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련에서 망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렉산더 솔제니친(1918~2008)이 1975년 뉴욕 강연에서 데이비스를 언급했다. 체코의 반체제 인사가 투옥된 동료들의 구명을 부탁했으나 차갑게 거절하더라는 얘기였다. “감옥 갈 짓을 했으니 내버려두라.” 이게 솔제니친이 폭로한 데이비스의 답변이었다.

뭔가 들통나면 일단 부인하는 게 좌파의 반사신경이다. 당사자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동안 좌파 진영은 솔제니친을 제국주의의 대변자로 공격했다. 탈북민을 배신자 취급하는 한국의 종북 좌파와 판박이 아닌가.

미국에선 솔제니친을 통해 알려져 반향이 컸지만, 동구권 지식인들에겐 꽤 알려진 사실이었다. ‘프라하의 봄’을 주도했던 체코 반체제 인사들이 이미 1972년 데이비스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작성자는 바츨라프 하벨(1936~2011)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한 이리 펠리칸(1923~99). 체코 공산당의 인권 탄압을 고발하며, 데이비스에게 정치범 석방에 함께 나서달라고 호소하는 글이었다.

은하계만큼 벌어진 미 좌우 진영 간극

그 말미에 미국 공산당 간부 샬린 미첼(1930~2022)이 데이비스를 대신해 전한 답이 나와 있다. 동유럽에서 투옥된 사람들은 자국 정부를 와해시키려 했고, 망명자들은 자기 나라를 공격했기 때문에 도와줄 가치가 없다는 게 데이비스의 입장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폭력활동 하다 감방 가면 박해, 공산권에서 자유화 운동하면 범죄란 말인가. 이게 좌파 인권 운동가의 본색인가.

당시 더타임즈, 가디언 등 영국 신문에도 미첼의 전언을 통해 데이비스의 발언이 보도됐다. 사회주의를 피해 자본주의 국가로 떠나는 망명은 퇴행적이며,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행위라는 취지다. 그의 좌파적 인권 의식이 진영논리에 얼마나 짙게 물들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의 주변엔 좌익 테러에 연루된 인물이 적잖다. 그중에서도 고교 동급생 캐시 부딘(1943~2022)이 유명하다. 테러조직 ‘웨더 언더그라운드’ 멤버인 남편 데이비드 길버트(81)와 함께 1981년 뉴욕에서 은행을 털다 경관 두 명과 경비원 한 명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다. 20여년 간 복역하다 2003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의 아들이 체사 부딘(45)이다. 2020년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으로 급진적 사법개혁을 하다 2년 만에 리콜 선거로 쫓겨난 인물이다. 부모가 수감돼 있는 동안 갓난애 체사를 입양해 키운 이가 ‘웨더 언더그라운드’의 리더인 빌 아이어스(81)와 버나딘 돈(83) 부부다. 이들도 테러 혐의 등으로 한동안 FBI에 수배된 적이 있다. 아이어스는 나중에 버락 오바마의 후원자이자 멘토 역할도 했다.

요즘 데이비스는 반트럼프 운동에 열심이다. 좌파 진영을 향해 끊임없이 저항하자고 연설해 환호를 받는다. 공산권의 인권탄압에 침묵했던 그가 트럼프의 독재와 투쟁하자고 하니, 확장성이 떨어져 보인다. 자기들끼리는 요란하지만, 바깥으로의 울림은 약하다. 그는 1980, 84년 공산당 대선 후보 거스 할(1910~2000)의 러닝메이트로 두 차례 출마해 0.04~0.05%를 득표했다. 지금 나온다면 얼마나 받을까. 혁명의 환상은 이제 화석으로 굳어지고 있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남윤호 미주중앙일보 대표가 현지에서 전합니다.

남윤호 미주중앙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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