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카와 아야의 시사일본어] 엔자이

2025-10-17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일본어로 ‘엔자이’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누명’ 정도가 비슷한 말이다. 일본에서는 과거에 누명을 뒤집어쓰고 사형 판결을 받은 여러 사건이 있었는데, 이들 중 일부가 최근 몇 년 사이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표적인 엔자이 사건 중 하나가 하카마다 사건이다. 1966년에 일어난 강도·살인 및 방화 사건인데 일가족 4명이 살해되고 집이 전소됐다. 프로 복서였던 하카마다 이와오(袴田巌)가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는데 재심 결과 2024년에 무죄가 확정됐다. 체포된 당시 30세였던 하카마다는 재심이 시작할 때까지 반세기 가까이 구속 상태였다. 그 기간 언제 사형을 당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한국에선 사형 집행이 1997년 이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일본 정부는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금 형사소송의 재심 제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재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하카마다의 경우 1980년에 사형 판결을 받고 이듬해인 81년 1차 재심을 청구했지만 2008년에 기각됐다. 다시 같은 해 2차 재심을 청구해 2014년에 재심이 시작됐다가 2024년에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이다.

지금처럼 CCTV도 유전자 감식도 없던 시대에는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을 강요당하는 용의자가 적지 않았다. 하카마다도 그중 한 명이었다. 유죄의 결정적 증거가 됐던 피 묻은 의류도 수사기관으로 인해 조작된 것으로 재심에서 인정됐다.

하카마다는 최근 국가와 시즈오카현에 약 6억 엔(약 5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시즈오가현 경찰과 검찰, 유죄 판결을 내린 법원의 책임을 묻는 것인데 엔자이에 대해 법원의 책임을 묻는 일은 이례적이다.

하카마다는 현재 89세로 인생의 대부분을 구속 상태로 살았는데 6억 엔을 받아도 그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다. 사실 하카마다 본인은 오래된 구속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로, 소송을 추진하는 것은 누나인 히데코와 자원봉사자들이다. 92세의 히데코는 “아직 재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가 길을 만들어놔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엔자이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재심으로 빨리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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