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란드부터 약 8000㎞를 여행해 온 바다비오리, 호주까지 쉬지 않고 날아가기 위해 들른 쇠제비갈매기, 제주도와 중국 사이를 헤엄치던 바다거북 등 한국의 바다에 들른 수많은 동물이 쓰레기에 얽혀 다치고 죽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바다에서 해양 생물들이 쓰레기에 얽혀 입은 피해를 집대성한 논문 <한국 해안과 수중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위협: 해양 쓰레기 얽힘의 심각성>이 국제 학술지 ‘마린 폴루션 불레틴’에 게재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노희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원 외 4명은 야생동물구조센터, 시민과학자, 잠수부들의 경험과 보도된 기사를 아울러 2003년부터 2023년까지 20년간 동해·남해·서해에서 해양생물이 쓰레기에 얽혀 입은 피해 사례를 종합했다. 해양쓰레기로 인한 연안과 해저의 생물 얽힘 피해를 국가 단위에서 종합한 최초의 연구다.
연구진은 최소 77종 428마리의 동물이 해양쓰레기로 인해 죽거나 다친 채 발견된 것을 확인했다. 338건은 연안에서, 90건은 수중에서 확인됐다. 피해를 입은 동물 중 13.0%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 목록’에 등재된 멸종위기종이었고 14.5%는 정부가 지정한 보호종이었다.


얽힘 피해의 절반 이상이 버려진 낚시도구 때문이었다. 낚싯줄과 낚싯바늘에 걸린 동물이 65.2%에 달했다. 그물, 밧줄, 통발 같은 상업용 어업도구에 걸린 동물은 33.2%였다. 1.6%의 동물은 노끈, 비닐봉지, 마스크, 케이블 타이 같은 ‘육지 쓰레기’에 피해를 입었다. 연구진은 “그간 취미 낚시 도구들은 상업용 어구들에 비해 작고 가벼워 환경에 영향을 덜 미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해양생물들에는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연안에서 가장 많이 피해가 확인된 동물은 바닷새다. 바닷새는 34종이 294건(87.0%)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4종의 바다거북, 5종의 해양포유류와 1종의 갑각류가 각각 33건(9.8%), 10건(3.0%), 1건(0.2%) 발견돼 그 뒤를 이었다. 단일종으로는 괭이갈매기가 115건으로 가장 많았다.
해수면 아래에서는 경골어류(뼈 있는 물고기)가 26종 50마리 확인돼 가장 많이 다치거나 죽었다. 산호(11건), 두족류(4건), 갑각류(3건), 이매패류(1건), 불가사리(1건) 등 다양한 동물들이 쓰레기에 얽힌 채 물속에서 발견됐다.


해양쓰레기에 얽힌 뒤 살아남은 개체는 절반이 되지 않는다. 연구진에 따르면 연안에서 발견된 338마리 중 123마리(46.2%)만이 바다로 돌아갔다. 152마리(45.9%)가 사망한 채 발견되거나 재활 중 안락사됐다. 21마리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수중에서 발견된 동물은 대부분 구조가 어려웠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20년간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구조된 동물 중 쓰레기에 얽힌 동물의 비중이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취미 낚시 인구가 늘면서 그에 따른 낚시 장비 분실률도 증가할 것으로 보여 해양동물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1990년 325만명이었던 낚시 인구는 지난해 1000만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은 “플랑크톤부터 고래까지 다양한 동물들이 해양쓰레기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쓰레기 얽힘은 쓰레기가 바다에서 이동하고 가라앉아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발생하는 탓에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양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에 관한 더 엄격한 규제, 낚시와 어업 활동에서 나오는 폐기물의 관리 개선, 해양 쓰레기 관련법의 강력한 집행이 필요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