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퍼트 콘테스트’ 된 한국 여자골프, 일본서 교훈 찾아야

2024-12-29

한때 US여자오픈 골프대회는 한국 선수들이 유난히 잘해 우스갯소리로 “미국에서 열리는 한국여자오픈”이라고도 했다. 다 옛날얘기다. 지난 6월 열린 US여자오픈 톱10에 일본 선수는 5명. 한국 선수는 없었다.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 성적도 일본이 한국을 앞선다. 내년엔 격차가 더 벌어질 전망이다. 내년 LPGA 투어 신인선수는 일본 6명이고, 한국 3명이다. Q시리즈도 1위 야마시타 미유, 2위 이와이 치사토 등 일본 선수가 상위권을 점령했다.

1980년대 엔화 강세 덕분에 일본여자투어 상금은 LPGA에 맞먹었다. 일본 선수들은 자국 투어에 안주했고, 서서히 고립되다 몰락했다. ‘잃어버린 30년’은 일본 경제뿐 아니라 여자골프에도 해당했다. 일본은 2019년 시부노 히나코가 AIG오픈에서 우승할 때까지 42년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2010년 취임한 고바야시 히로미 JLPGA 회장은 “국제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세웠다. 10여년간 끈기있게 추진한 정책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고바야시 회장 이래 JLPGA는 소속 선수의 LPGA 메이저대회 도전을 독려했다. 메이저대회 상금 등 성적을 일본 JLPGA투어 성적에 포함시켰다. 또 메이저대회 출전은 ‘2년 연속 JLPGA 동일 대회 불참 금지’의 예외 사유로 했다.

반면 KLPGA는 자국 투어가 커지자 소속 선수의 LPGA 메이저대회 출전 길을 좁혔다. 특히 국내에서 열리는 LPGA 대회에 소속 선수 참가를 사실상 막았다. 스타 선수 유출과 그로 인한 투어의 축소를 우려하는 KLPGA의 고민은 이해한다. 그러나 일본의 개방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더 효과적이었다. 우리 선수가 세계 최고일 때 뛰어난 선수가 계속 나오고, 국내 투어도 커진다.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의 메이저리그 활약이 일본 프로야구 흥행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2024 파리올림픽 여자 골프에서 야마시타 미유가 연거푸 까다로운 파세이브를 하는 걸 보며 놀랐다. 어려운 코스에서 단련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JLPGA는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코스를 어렵게 만든다. 3라운드 대회를 4라운드로 바꾸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코스도 점점 쉬워지는 느낌이다. KLPGA 대회 중계를 보면 파 4홀에서 8번보다 긴 아이언을 잡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코스가 길고 어려우면 선수가 항의하고 경기 시간이 지연돼 ‘좋은 게 좋은 것’ 식으로 간다는 얘기가 들린다. 요컨대 또박또박 치고 그린에 올라가 승부를 보는 ‘퍼트 콘테스트’가 돼 가는 형국이다. 일본에서도 어려워진 코스에 대한 불만은 있었다. 선수를 설득하는 한편, 레전드급 선수에게 코스 세팅을 맡겨 목표를 관철했다.

5년 전만 해도 세계를 압도하던 최강 한국 여자 골프가 위기 상황이다. 침체는 생각보다 길게 갈 수 있다. 도전 의식 사라진 선수, 외모 중시 문화, 규모만큼이나 커진 협회의 정치싸움 등 원인은 다양하다. 자존심 상하겠지만, 더 늦기 전에 일본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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