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문화 산업의 뿌리를 갉아먹고 있던 두 가지 법률 문제가 일단 해결됐습니다. 다른 정책들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습니다.”
암표 거래를 금지하는 공연법·국민체육진흥법과 온라인 불법 복제를 막는 저작권법의 국회 상임위원회 통과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상당히 고무된 듯 보였다. 관련 법률이 조만간 국회 본희의를 통과하면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된다. 7월 말 이재명 정부의 첫 문체부 장관으로 취임한 뒤 3개월 여만에 이룬 강력한 성취다. 이어 K컬처 시장 300조 원 시대와 외래 관광객 3000만 명 실현을 위한 정책 강화에도 본격 나서기로 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을 맞아 최 장관과 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나 향후 문화 정책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암표 전면 금지는 획기적인 정책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공연장 등의 암표가 문제로 인식됐지만 처벌은 약한 상태였다. 그나마 매크로를 통한 암표 거래를 금지하는 법률이 지난해 제정됐는데 효용성에 한계가 있었다. 암표도 나름대로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 아니냐는 일부의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 대표 출신인 최 장관은 취임 후 국회를 일일이 설득하며 “웃돈을 받고 티켓을 판매하는 모든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해 금지”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밀어붙였고 지난달 28일 관련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했다. 지난 20여 년의 암표 논쟁이 완전 금지로 정리된 셈이다.
이와 함께 온라인상 불법 복제물에 대한 신속 차단 권한을 문체부에 부여한 저작권법 개정도 중요한 성과다. 그동안 금지 여부 심의만 2~3주 걸리면서 실제 제재 효과가 없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최 장관은 “공연법·저작권법 개정은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법 취지에 맞게 콘서트와 스포츠, 온라인 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의 공약이기도 한 K컬처 시장 300조 원 실현은 최 장관과 문체부의 명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최 장관은 “종합적인 K컬처 산업 전략을 짜서 이르면 내년 1월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문화 콘텐츠 뿐만 아니라 예술 부문과 푸드, 뷰티, 패션, 관광 등 연관 산업 전반을 아우를 전략을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K컬처 300조 원’은 산업으로서의 현실적 목표치이자 우리가 문화창조산업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가겠다는 선언적 지향점”이라며 “K컬처 산업 전략은 더 나아가 500조 원, 1000조 원 시대 실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영화나 게임 등 최근 허약해졌거나 성장 속도가 더뎌진 부분도 다시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최 장관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찾은 현장이 영화 산업이었다”며 “다시 영화의 심장이 뛰기 위해서는 제작 지원과 투자 환경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관광도 더 강한 컨트롤타워와 함께 새 판 짜기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최 장관은 “관광 정책을 집중력 있게 이끌어나갈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확실하게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일본의 외래 관광객 숫자가 한국의 두 배인데 이러한 격차는 10여 년 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직접 관광을 챙기면서 이뤄졌다”며 “이재명 대통령의 관광 산업 육성 의지도 확실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 정책은 특성상 다양한 부처를 조율하는 힘이 절실한데 이는 현재 문체부의 관광 조직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수도권에만 머물고 있는 외래 관광객 수요를 다른 지역으로 넓히기 위해 제2, 제3의 글로벌 관광 거점을 지방에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재확인했다. 최 장관은 정보기술(IT) 업계 수장을 지낸 경험을 반영해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민간 플랫폼과 협업해 핫스팟을 선정하고 여행객이 직접 홍보하는 ‘핫스팟가이드’ 사업과 함께 운동장 등을 공연장으로 바꾸는 ‘대중음악 공연환경 개선 지원’ 사업을 내년에 추진하는 것도 주목하기를 바랬다.

서울 종로구 종묘의 경관 보호와 관련해서는 인근에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게 할 근거가 될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세계유산법)’ 시행령을 연내 만들기로 했다. 최 장관은 “세계유산법 시행령인 대통령령을 이달 중 입법예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시행된 세계유산법은 세계유산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에 대한 영향평가 실시를 규정하고 있지만 그동안 서울시 등의 반대로 세부 기준이 담긴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아 실제 영향평가가 진행되지 못했다. 앞서 최 장관은 종묘 앞 고층 빌딩과 관련해 “법률 제·개정을 포함해서 모든 수단을 강구해 종묘 경관을 보호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유네스코의 권고와 함께 세계유산법까지 쌍끌이로 세계유산영향평가 압박이 가해지는 셈이다.
다만 그는 종묘 논란이 정쟁으로 비춰지는 것을 우려했다. 최 장관은 지난달 7일 종묘를 찾아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을 비판한 것에 대해 “서울시가 합의를 깨고 10월 말 세운4구역 개발과 관련한 기습 변경 고시를 했고 저는 종묘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추가 조치를 강행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며 “그때 저의 표현이 거칠었고 불편했다면 유감이다. 다만 그 이후로 서울시의 일방적인 독주 움직임이 잠시 멈춘 듯해 매우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체부 장관은 국가유산(문화재) 주요 정책에 대해 공식적인 책임을 갖고 있다며 서울시가 유네스코의 지침에 따라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아 객관적으로 검증하길 바란다고 했다.
전 정부에서 발표했다가 보류된 문체부 산하 서울예술단·국립오페라단 등 국립예술단체의 지방 이전 논란에 대해서 글로벌 경쟁력과 지역 균형이라는 2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최 장관은 “올해 초 정권 공백기에 충분한 협의와 숙고가 이뤄지지 않은 채 발표돼 논란을 낳은 이슈”라며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국립예술단체들이 설립 취지에 부합하게 자체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비전에 맞게 성장할 수 있을지, 또 지역의 문화 격차를 줄이고 공연 예술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을지 두 측면을 함께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출범한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의 역할도 강조했다. 2027년 말 개최하기로 한 ‘페노미논 페스티벌’에는 대중음악뿐 아니라 영화, 게임, 웹툰, 푸드, 패션 등 K컬처를 이루는 각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행사들을 선보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공동위원장이기도 한 최 장관은 “K컬처가 주목받는 지금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각 분과별로 핵심 과제를 도출하고 빠르게 해야 할 일을 추리고 있는 중”이라며 “가시적인 노력들이 곧 구체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장관은 한국 문화 열풍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해외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의 확대 방안도 제시했다. 2030년까지 세종학당 숫자를 당초 350개소에서 360개소로 수정한 확대 계획을 새로 내놓았다. 현재 전세계에 252개의 세종학당이 운영 중이다. 또 온라인에서도 전세계 학습자들이 불편함 없이 한국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반의 ‘i-세종학당’도 내년에 구축하겠다고 덧붙였다.
2년 가까이 공석이었던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비롯해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장 선임 절차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겠다고 확인했다. 그는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이미 공모가 끝났고 심사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연내 임명을 목표로 역량 있는 적임자가 인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수문 선임기자. 사진=성형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