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전국시대 제후들에게 전략을 제시하던 지략가를 책사라 했다. 그 책사는 현대적으로 시대정신을 읽는 경세가, 국정·선거 홍보전문가로 통하는 스핀닥터, 크고 작은 정치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의 경계를 오간다.
1984년 미국 대선에서 첫 등장한 스핀닥터는 빌 클린턴의 두번째 대선에서 유명해졌다. 성추문 스캔들 로 위기에 몰린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선거 캠페인을 앞세웠다. 클린턴에겐 사적 과오를 사상 최대 재정 흑자 기록으로 비틀은(SPIN) ‘보이지 않는 손’ 딕 모리스와 제임스 카벨이 있었다. 시대정신을 꿰뚫고 통찰력을 갖춘 책사는 전략가에 가깝다. 한나라 유방의 장량, 유비 옆 제갈공명, 조선의 킹메이커 정도전 등을 들 수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상임선대위원장으로 합류했다. 이 후보의 외연 확장과 국민 대통합을 위한 첫 인선이다. 윤 전 장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쓴소리’ 참모, 2000년 이회창 한나라당의 개혁공천을 주도한 보수의 전략가로 꼽혔다. 2012년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의 방송 찬조연설자,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멘토 역할도 했다. 그는 늘 보수의 책사로 불리는 걸 거부했다. “보수도 아닌 이들이 보수로 포장해서 나를 배척했으니 나는 보수의 책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필요하면 진보·보수가 상대의 가치를 써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했다.
‘진보적 보수주의자’ 윤여준은 이재명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어떤 일을 하려 할까. “거대한 전환기를 이끄는 리더십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내란 세력을 제외한 연대·통합을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뉴노멀시대준비위원회’ 구성이 전환기 리더십이고, “진짜 보수가 상실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내란 종식을 이루는 통합이라고도 했다. 한덕수 권한대행 역할은 “과도기 관리자로 끝나야 한다”는 것도 그의 소신이라 했다.
이날 현충원을 찾은 이 후보는 이승만·박정희·박태준 묘역을 두루 참배했다. 중도보수까지 정치 지형을 넓히는 다층 포석이다. 윤 전 장관은 아직 이 후보의 청사진을 확신하지 못한다고 했다. 진보적 보수주의자 윤여준의 존재를 ‘진정한 전략가’로, 진보·보수 사이 ‘유의미한 오솔길’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이 후보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