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2024-12-17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슨이 쓴 <두 도시의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책 제목의 두 도시는 파리와 런던을 말한다. 파리는 고통스러운 왕정 통치 끝에 자코뱅파가 뒤엎어버리고 기요틴으로 상징되는 피의 숙청이 이루어진 프랑스 혁명의 중심 도시이다. 런던은 합리적인 통치와 위로부터의 혁명을 성공시킨 명예혁명이 일어난 도시이다. 명예혁명과 프랑스 혁명 사이에는 100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한다. 또한 이 소설이 발표된 시점과 프랑스 혁명 사이에 존재하는 70년이라는 시차를 감안해도 재미있는 주제다.

디킨슨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 소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작가가 영국의 입헌군주제가 프랑스의 공화제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독자에게 가스라이팅 했다고 한다. 또한 토마스 칼라일이 쓴 <프랑스 혁명>에서 역사적 사실을 마음대로 차용하면서 영국식 귀족주의를 미화시켰다고 비판한다. 작가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 경제적 번영의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면을 소설의 주제로 삼았으며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 작가를 단순히 국뽕으로 매도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층 시민들이 왕과 귀족으로부터 억압과 착취를 당하게 되면 불만이 커지고, 불만이 눈덩이처럼 커지면 분노하게 된다. 이러한 분노가 쌓여 임계치를 넘어서면 폭동이 일어난다. 분노로 가득찬 하층 시민들이 혁명의 주체 세력으로 등장하고, 이들은 권력의 통제를 벗어나 또 다른 폭력적인 권력 남용으로 피의 숙청이 일어난다. 이런 문제점을 런던의 명예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비교함으로써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두 혁명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명예혁명은 왕과 의회 권력 사이의 충돌이다. 영국은 이미 대헌장을 통해 왕은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법 테두리 안에서 통치해야 한다는 원칙을 수립한 바 있다. 그러나 왕권신수설을 믿는 찰스왕은 예산을 늘려달라는 자신의 요구를 의회가 거듭 반대하자 의회를 해산시켜버린다. 반면 의회의 동의 없이 징수할 수 있는 선박세를 부과하게 된다. 선박세는 해군을 유지하기 위해 항구와 해안가에 거주하는 사람으로부터 징수하는 것인데, 내륙에 있는 주민들에게도 걷게 되면서 의회뿐만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불만을 얻게 된다.

의회는 지방의 소지주로서 젠틀맨, 법률가, 그리고 상인 출신의 지주를 포함한 젠트리 그룹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세금 징수를 놓고 왕과 충돌하면서 명예혁명이 일어 났다. 이로인해 권력의 중심 추가 왕과 결탁한 상업자본으로부터 지주와 상공업자들이 지배하는 의회로 넘어가게 된다. 명예혁명으로 왕은 의회의 명시적인 동의 없이 세금을 매기지 못하게 된다. 그후 법과 규칙으로 규정된 개인의 권리에 따라 개인의 경제적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혁명이 발생하기 전 프랑스는 그 당시 인구의 2% 밖에 안되는 성직자와 귀족이 전체 토지의 40%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면세 혜택을 누렸다. 프랑스는 미국 독립전쟁 지원 등 여러 전쟁에 참여하면서 국가부채는 늘어났다. 반면 면세 혜택을 받는 성직자와 귀족으로 인해 노동자와 농민의 세금 부담은 더 크게 늘어나자 불만이 폭발하게 된다. 의사, 변호사, 사업가 등 전문지식을 통해서 부를 축적한 전문직인 부르조아 계급의 주도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그 당시 노동자, 빈농, 시민 등 프롤레타리아 계급들도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혁명에 참여했지만, 혁명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발언권은 묵살됐다. 귀족과 성직자들이 파리를 떠나면서 권리요구의 완충지대가 없이 억눌렸던 욕구가 극단적으로 표출되면서 피의 숙청이 일어난 것이다.

두 혁명의 공통점은 세금 징수로 인한 시민의 불만과 신흥 부르조아 계급의 권력과 명예를 향한 정치적인 욕망이다. 반면 런던은 전통적인 위계질서를 통한 권위를 인정한 반면 프랑스는 혁명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권력이 통제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먼저, 의회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민주주의 꽃인 견제와 균형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경우 권위로 버틸 수 있었지만 정권 말기에는 결국 식물 대통령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둘째, 국민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표를 얻기 위해 지불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재정지출은 혜택을 보는 계층은 환호하겠지만, 결국 과거 의회가 반대했던 증세를 주장하게 된다. 그 부담은 국민이 진다. 셋째, 사법부가 정치화하면서 완충지대가 없어졌다. 법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데 되면 데모가 일상화되고 사회적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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