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당 잃은 ‘미스 아베’ 극우색 엷어진다

2025-10-13

나가이 시게토 전 일본은행 국제국장 인터뷰

일본 정국이 안갯속이다. ‘미스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가 자민당 총재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공명당이 연립정부 탈퇴를 선언했다. 26년간 유지된 정치적 동맹의 붕괴다. 다카이치가 이달 안에 있을 의회 투표에서 차기 총리가 될지 불투명해졌다. 지난해 10월 선거 이후 존재감이 부쩍 커진 다마키 유이치로(玉木 雄一郎) 국민민주당 대표가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과 손잡고 차기 총리가 되는 시나리오마저 제기된다. 두 당의 정책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게 걸림돌이다. 일본 월스트리트인 니혼바시(日本橋) 이코노미스트들이 여전히 다카이치를 차기 총리로 보고 그의 경제정책을 살펴보는 이유다. 이 가운데 한 명인 나가이 시게토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일본대표를 중앙일보가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일본은행(BOJ) 국제국장을 지냈다.

공명당 이탈로 차기 총리 불투명

자민당 내부 결속 유지 중요해져

이시바 한·일 협력 기조 계승 등

기존 자민당 정책 지속할 가능성

쌀값이 낳은 지각변동

일본 정치가 민주적인지는 의문이지만,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게 매력이었다. 이제는 그런 매력마저 잃어버린 듯하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자민당이 지배해 왔다. 거대 정당인 자민당과 군소 정당으로 이뤄진 구조였다. 그런데 자민당이 보수이기는 하지만, 정치 행태를 보면 보수정당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무슨 뜻인가.

“부자와 재계 보호자로 구실하기는 하지만, 포퓰리스트 정책을 대거 펼쳤다. 무상교육을 폭넓게 했고, 취약한 가정을 돕는 정책을 폈다.”

요즘 일본 유권자들이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을 펼쳐온 자민당에 등을 돌린 이유가 무엇일까.

“저소득 가정이 연 3%에 이르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눈엔 3% 물가 상승이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 상태였던 일본에서 쌀값 파동은 심각한 충격이다. 저소득층이 자민당에 등을 돌리고, ‘일본인 퍼스트’를 외치는 참정당 등에 표를 던졌다.”

소비세 인하 가능성 낮아

다카이치가 한국에서는 미스 아베로 불린다. 그가 총리가 되면 펼칠 경제정책, 즉 ‘미스 아베노믹스’가 궁금하다.

“다카이치는 10선인 우파 정치인이다(한국에선 극우로 불린다). 아베 시절 총무상이었다. 최근엔 경제안보상을 맡았다. 다카이치가 참정당 등 우파 군소 정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할 가능성이 있다. 그가 참정당 등이 요구하고 있고, 그 자신도 내심 원하는 소비세 인하를 결단할지가 관심이다.”

소비세는 재정을 공격적으로 확대한 아베노믹스 시절(2012~20년)에도 인상됐을 정도로 자민당이 주도한 정책인데.

“소비세가 고령화에 따른 복지지출과 인프라 투자 등으로 늘어난 국가부채를 감당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세수라는 게 자민당의 컨센서스다. 다카이치는 공명당 이탈 때문에 자민당 내부의 지지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 그가 (참정당 등과 손잡고 총리가 되더라도) 기존 자민당 정책에서 크게 벗어날 가능성이 작다.”

“12월에 금리 인상된다”

요즘 일본은행(BOJ)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총재가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고 있다. 다카이치가 총리가 되면 통화정책은 어떻게 될까.

“우선 통화정책 구조를 이해하는 게 좋다. 기준금리 등이 내각-BOJ 사이에 맺어진 ‘2013년 협약’에 의해 결정된다. 총리와 BOJ 총재, 경제관료 등이 회의체에서 결정된 전략에 따라 통화정책을 펼치기로 한 협약이다. 다카이치가 총리가 되면 통화정책에 대한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카이치가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 정상화를 반대하고 나서지 않을까.

“최근까지 발언을 보면 다카이치는 내심 통화정책 정상화를 반대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위상과 시장 압력 때문에 우에다 BOJ 총재가 추진하는 정상화를 막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옥스퍼드 이코노믹스)가 12월에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예측하는 이유다. 우리는 현재 0.5%인 기준금리가 내년 6월 전후 1%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본다.”

트럼프와 재협상한다고?

얼마 전 다카이치가 5500억 달러(약 790조원) 투자를 중심으로 한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다시 살펴볼 뜻을 내비쳤다. 실제 그가 재협상을 추진할까.

“아니다. 최근 다카이치가 재협상 발언을 번복했다. 현재 합의 사항을 유지하는 게 다카이치가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다.”

다카이치가 “한국이 기어오른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총리가 되면 한국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으로 보는가.

“한·일 관계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 시절에 눈에 띄게 개선됐다. 다카이치는 좋아진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자민당 주류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는 두 나라 과거에 대해 전임자들보다 보수적이고 일본인을 우선시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역사 문제를 일단 접어두고 싶어할 가능성이 크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미·중 갈등과 도널드 트럼프 정책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경제와 안보 이슈 등 동아시아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 협력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니혼바시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이 다카이치가 총리가 되면 주식·채권·통화가 동시에 약세를 보일 가능성(트리플 약세)을 경고했다. 그가 평소 주장한 정책이 실행되면 국가부채 상황 등이 더 나빠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나가이 대표의 분석과 전망대로라면, 다카이치는 공명당 이탈 때문에 운신의 폭이 줄어들어 자민당 주류 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나가이 시게토=일본 도쿄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미국 터프츠대에서 국제관계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은행(BOJ)에 들어가 미국과 유럽 지점 등에서 근무한 국제통이다. 영국계 경제분석 기관에서 일하고 있어 비교적 객관적으로 일본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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