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앞둔 김정은의 3무, 전전후통 전략 준비했나

2025-01-15

새해 들어 북한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가 그렇다. 집권 이후 육성으로 계속되다 2020년부터 연말 전원회의 결론으로 대체해 한 해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던 신년사가 올해는 없었다. 2018년 한 차례를 제외하곤 매년 김 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로 새해를 시작했다는 보도도 올해는 사라졌다. 금수산태양궁전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연례적으로 해오던 새해 루틴이 깨진 것이다.

김정은, 새해 루틴 깨져

미국 향해 “초강경 정책”

절제된 군사 도발 모습도

북·미 대화 유도 노린 듯

여기에 딸의 손을 잡고 미사일 발사 현장을 직접 찾았던 김 위원장의 발걸음도 멈췄다. 북한은 지난 6일 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의 엔진에 새로운 탄소섬유복합재료를 사용했고, 비행 및 유도체계 등 종합적이며 효과적인 새 방식을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무기체계 시험 때는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평양 인근에서 발사한 미사일을 “누구도 대응할 수 없는 새로운 무기 체계”라고 북한이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김 위원장은 화상으로 발사 장면을 지켜봤다. 14일 발사한 미사일과 관련해선 15일 오후 현재 아무런 언급조차 없다. 이 때문에 북한이 올해 실행 전략을 의도적으로 유보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의 탄핵 정국이나 미국의 새 행정부, 즉 트럼프 2.0시대를 앞두고 유동적인 상황으로 인해 구체적인 대응 시나리오를 확정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강력해진 말, 행동은 수위 조절?

앞서 북한이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8기 11차)를 하고 나서 구체적인 대외 정책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통상 연말 전원회의는 한 해를 결산(북한에선 총화)하고, 새해 자신들의 과업과 정책을 분야별로 제시하곤 했다. 전원회의 때 김 위원장이 발표한 장문의 결론을 신년사로 대체했던 이유다. 그런데 매일 전원회의 내용을 전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5일 동안 회의를 하고도 종료 이틀 뒤에야 개최 사실을 공개했고, 내용 역시 대폭 줄었다. 2023년 말 회의 때 “교전중인 적대관계”라고 규정했던 남북관계에 대해선 아예 생략했다. 대미 정책 역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망적인 국익과 안전보장을 위하여 강력히 실시해 나갈 최강경 대미대응 전략이 천명됐다”는 게 전부다. 그동안 북한은 “강경에는 초강경”이라는 정책으로 미국에 맞섰다. 미국이 강경으로 나온다면 초강경으로 대응하겠다는 조건부였다. 반면 이번에는 “최강경”이라는 새로운 표현으로 ‘선방’을 치고 나왔다. 이어 두 차례 미사일을 연거푸 발사하며 전원회의 결론을 실행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뭔가 선을 넘지 않으려는 북한의 의도가 엿보인다. 지난 6일 신형 극초음속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중장거리미사일이었다.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여러 종류 보유하고 있지만 의도적인 사거리 조절로 읽힌다. 14일 자강도 강계에서 발사한 미사일은 단거리탄도미사일이다. 북한은 2017년 7월 강계 인근의 무평리에서 ICBM을 발사한 적도 있다. 북한이 “미국의 반공 전초기지로 전락했다”고 주장한 한국 또는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면서도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강도를 조절한 듯하다.

트럼프 관심끌기 전략

그러면서도 북한이 이달 들어 미사일 카드를 꺼낸 건 트럼프 2기 출범과 무관치 않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핵과 미사일 카드로 관심을 유도해 왔던 북한의 움직임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과 세 차례 만났고,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내내 “김정은과 잘 지냈다”고 강조했다. 물론 최근 북한이 발사하는 미사일이 개발 과정에 따른 기술 차원의 점검일 수는 있다. 그러나 ‘절친’ 트럼프의 취임을 앞두고 군사적 긴장 고조를 통한 관심 유도 전략, 즉 일종의 ‘날 좀 보소’ 또는 ‘간 보기’ 전략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인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를 전격 선언했다. 이어 다음 해 7월과 10월엔 각각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미국 본토를 핵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극한의 카드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오바마 1기 행정부가 출범한 2009년엔 장거리 로켓 은하-2호 발사와 2차 핵실험을, 오바마 행정부 2기가 출발한 2013년엔 3차 핵실험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된 2017년에는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이 카드였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전엔 평북 구성에서 순항미사일 2발을 쏘고, 8차 당 대회를 열어 국방발전 5개년 계획을 확정했다.

북한이 전원회의에서 최강경 대미 정책을 확정했고, 미국의 리더십 교체를 전후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동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당분간 이런 ‘각 세우기’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오는 22일 예정한 최고인민회의(정기 국회 격)에서 남북 경계선을 확정하는 것과 같은 남북, 북·미 관계와 관련한 긴장 고조 정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 러시아의 뒷배를 활용한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를 추진하며 북한 문제 재해결을 시도할 수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되거나 러시아가 대북제재에 다시 동참하게 되면 북·러 관계가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미 관계 개선 없이는 북한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김 위원장이 잘 알고 있다. 북한은 상황에 따라 중국, 러시아에 번갈아 손을 뻗으며 과도기를 견뎌왔다. 현재 나타나는 북한의 ‘절제된’ 도발이 당장은 2019년 ‘하노이 노딜’에 대한 되갚음이라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진짜 속내는 비록 트럼프 2기 행정부 전반기엔 무력 과시로 긴장을 고조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미국과 대화와 협상에 나서겠다는 것 아닐까. 북한은 이미 ‘전전후통(前戰後通)’ 전략을 실행중인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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