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화려했던 '10월의 외교 파티'는 잊어라

2025-11-12

2015년 9월 3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 톈안먼 성루 위에 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사 열병식을 지켜봤다. 우리나라 정상이 톈안먼 성루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미국은 마뜩잖아했다. 박 대통령이 애써 친중(親中) 행보에 나선 것은 중국과의 통상 협력을 확대하고 북한 비핵화에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만에 사달이 났다. 이듬해 7월 한국이 북한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경북 성주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공식화하고 실행에 옮기자 중국은 무자비한 경제 보복에 나섰다. 2017년 한 해에만 8조 500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10년 전 ‘사드 악몽’의 기억을 소환한 것은 달콤한 말 뒤에 숨어 있는 칼날, 이른바 ‘구밀복검(口蜜腹劍) 외교’를 경계하자는 의미에서다. 한국이 처한 지금의 동북아 외교 지형도 예외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고 5개월이 지났다.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3%에 달했다. 긍정 평가 이유로는 외교가 가장 높은 30%로 경제·민생(13%)을 크게 앞질렀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한미·한중·한일 등 주요국과의 양자회담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달콤한 ‘외교 허니문 파티’는 이제 끝났다. 화려한 파티와 악수 뒤에 가려진 ‘디테일의 악마’가 서서히 본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중국 변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1년 유예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중국이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에 거래금지 제재를 발표한 것은 신호탄에 불과하다. 중국을 정조준한 미국 공급망에 편승한다면 언제든지 보복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에 다름 아니다. 미중 통상 관계가 다시 틀어지거나 관세 보복이 재개되면 한국의 반도체·자동차·철강·방산 분야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북한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이 추진하는 원자력추진잠수함이 속도를 내면 딴지를 걸 가능성도 농후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한국의 원잠 건조를 승인하자 중국 외교부는 즉각 “핵 확산 방지 의무를 이행하라”며 날을 세웠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에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견해를 표명하자 중국의 주오사카 총영사는 “그 더러운 목은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며 위협했다. 주한 미군 지위와 역할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되거나 한미 동맹 현대화가 본격화되면 우리에게도 ‘전랑(戰狼·늑대 전사)외교’ 민낯을 들이댈 수 있다.

중국이 서해에 설치 중인 구조물도 뇌관이다. 중국은 애써 양식용 시설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향후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고 영유권 주장 근거로도 삼을 수 있다. 미국이 “수십년간 국제법 준수를 거부하면서 역내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 스프래틀리제도 등에 구조물과 인공섬을 건설하고 필리핀과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정부는 중국과의 통상·외교 관계에서는 한미 공급망, 주한미군 현대화, 원잠, 서해 구조물 등 작은 불씨 하나가 큰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세심한 대응 전략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등을 돌려 언제든지 칼집 속의 예리한 칼날을 우리 목에 겨눌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대일 외교도 예외가 아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다카이치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갖고 ‘미래지향적 협력’ ‘셔틀외교’를 약속했지만 휘발성 큰 갈등 요소가 잠복해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의원 시절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했고 “한국이 기어오른다” “(독도 문제는) 눈치 볼 것 없다” 등 강경 우익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집권 초기인 지금은 ‘오모테나시(환대) 외교’를 내세우고 있지만 일본 정치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 이달 초 한국 공군의 ‘블랙이글스’가 독도를 비행했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가 항의와 함께 오키나와 나하기지 착륙과 급유 요청을 거부한 것은 아슬아슬한 한일 외교의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 정부의 동북아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화려하게 보였던 ‘10월의 악수’에 취해서는 안 된다. 돌다리도 두드리는 자세로 중국·일본과의 외교 갈등 요인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사안별 대응 매뉴얼을 정교하게 수립해놓아야 한다. 중국의 ‘전랑 외교’, 일본의 ‘극우 외교’ 비수가 언제든지 날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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