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커버린 이들을 위한 생일파티…‘느리게 가는 마음’

2025-03-06

윤성희 작가 7번째 소설집, ‘생일’이 키워드

“등장인물들에게 작은 생일 파티해주고파”

느리게 가는 마음

윤성희 지음| 창비 | 264쪽 | 1만7000원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엄마가 퇴원하면 구구단 8단과 9단을 외웠다고 자랑할 셈이던 민호의 계획은 이뤄지지 못했다. 어쨌거나 아이는 자란다. 급식 메뉴가 궁금한 고등학생이 됐다.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은 아버지에게 화가 나 함께 가출하자고 말하는 친구 성규도 있다.

성규가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기로 한 ‘생일 쿠폰’을 내미는 통에 민호는 동반 가출을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바다 보러 가는 건 어떨까?” “싫어. 영화 보면 가출한 애들은 꼭 바다로 가더라. 진부해.” 영화관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마지막 영화를 보고 숨어 있자는 계획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텅 빈 극장 안에서 성규가 무대 인사에 나선 배우처럼 앞으로 나섰다. 민호는 박수를 쳤다. 성규는 부모님이 문방구를 하다 망했고, 이후 아빠가 자신을 보육원에 보낸 일, 다시 만나게 된 일에 대해서 얘기했다. 후드티를 머리까지 뒤집어쓰는 습관이 보육원 시절의 한 사건 때문이라고도 했다.

민호도 무대에 올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민호의 아버지는 마치 엄마가 살아 있는 것처럼 방에서 혼잣말로 엄마와 대화했다. 몰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 민호는 안방 커튼에 누군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때 공중부양을 했고, 땅으로 내려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까치발로 걷는 것이 습관이 됐다고 했다. 무대 인사를 마친 두 소년은 극장을 나서 24시간 해장국집에서 이른 아침을 먹는다.

윤성희의 일곱 번째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의 단편 중 하나인 ‘마법사들’은 생일을 맞아 함께 가출을 하게 된 두 소년의 이야기다. 가족의 죽음과 상실 등 가볍지 않은 소재가 던져지지만, 이야기는 그 무게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가볍고도 리듬감 있게 흘러간다. 쓸쓸한 마음이 들려는 찰나 유머와 따뜻한 위로를 담은 이야기가 더해진다. 문장은 물 흐르듯 부드럽다.

이어지는 일곱 편의 단편도 비슷하다. ‘타임캡슐’ 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고모와 사는 ‘나’가 주인공이다. 인생이 꼬여 꽈배기 장사를 하게 됐다는 고모와 사업이 계속 망하는 아빠는 자주 싸운다. 열다섯 번째 생일날, 고모와 아빠는 또 싸웠고 나는 화가 났다. 고모와 아빠는 앞으로 돌아오는 ‘나’의 생일에는 절대 싸우지 않겠다고 말한다.

표제작 ‘느리게 가는 마음’은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보낸 엽서가 배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 1년 전 방문한 느리게 가는 우체통을 찾아 떠난 이모와 ‘나’의 이야기다. 나의 주인공도 엄마가 아프다. 워낙 말이 없어 별명이 ‘한 단어’인 친구 선우도 나온다. 어느 날 마카롱 가게 앞에서 동생과 손을 잡고 서 있는 선우를 본다. 학교에서와 다르게 동생과 조잘거리는 선우를 보고 나는 생각한다. “다행이다. (선우에게) 동생이 있어 다행이다.”

‘자장가’는 사고로 죽은 아이가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고 머무는 이야기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죽음을 가슴 아파하며 밤을 새우기를 은근히 바라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아이의 생일날 엄마는 아이가 좋아했던 음식들로 생일상을 차린다. 음식을 싸 들고 친구를 만나러 간 엄마는 그리움에 운다. 여전히 엄마 곁에 머물던 아이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운 엄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아이는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자면서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아이는 생각한다. “엄마는 그렇게 매일 한 살씩 나이를 먹겠지.”

‘웃는 돌’에는 돌아가신 엄마의 목소리가 우연히 한 유튜버의 영상에 녹음돼 있다는 걸 발견한 이의 이야기가, ‘해피 버스데이’에는 생일이 아닌 날 친구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게 된 남자의 이야기가 담겼다.

각기 다른 내용의 단편들이지만 주요 키워드가 ‘생일’로 동일하고 누군가의 죽음이 동반한다는 점에서 여덟 편의 이야기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망한 문구사, 꽈배기 집, 만물 트럭, 체육 교사 등 앞선 이야기에서 등장한 장소나 소재 인물의 특성이 다른 단편에도 비슷하게 실렸다는 점도 연결성을 더한다.

전반적으로 담담한 위로가 담긴 책이다. 평소 생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을 쓸 때, 인물들에게 작은 파티를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에서 생일 파티를 해주다 보니 기분이 참 좋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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