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을 준비하는 디젤 동력

2025-03-04

1824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니콜라 레오나르 사디 카르노'가 '카르노 싸이클' 개념을 고안한다. <불의 동력에 관한 고찰>에서 무엇이든 태워 열을 얻을 수 있다면 동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열을 동력으로 바꾸는 증기기관이 결국 보편적인 동력원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로부터 50년 후인 1876년 독일의 과학자 '카를 파울 고트프라이드 폰 린데'는 뮌헨공대에서 카르노 싸이클이 기존의 증기기관 대비 더 많은 열을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 그의 강의를 들었던 인물이 디젤엔진 창시자 '루돌프 디젤'이다. 1892년 디젤은 '이론 및 합리적 열 모터의 구조' 논문을 발표하며 디젤엔진 상용화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비판도 거셌다. 그럼에도 상용화 의지를 꺾지 않았고 이때 그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곳이 무기 제조사 '크루프(Krupp)'와 엔진 제조사 '마쉬넨파브릭 아우스부르그'다. 무기와 전함 등을 제조한 크루프는 훗날 철강기업 티센과 합병해 지금의 티센크루프가 됐고, 마쉬넨파브릭은 상용차 전문기업 만(MAN)으로 지금도 명맥을 유지한다.

1893년 두 회사는 협력해 디젤엔진 프로토타입을 제작, 동력발생장치로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해 7월에 완성된 디젤엔진 프로토타입은 새로운 동력기계로 쓸 수 있음이 명확히 입증됐고 1894년 두 번째 프로토타입을 완성해 본격 시험에 착수했다. 마침내 1898년 최초의 상업용 디젤엔진 공장이 설립된 후 디젤엔진은 각종 산업용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1924년 디젤엔진은 자동차 동력발생장치에도 진출한다. 1923년 벤츠와 경쟁사였던 다임러가 각각 디젤 엔진 트럭을 만들어 베를린과 슈투투가르트 왕복 주행에 성공한 덕분이다. 이어 1924년 만(MAN)이 엔진 크기를 4기통으로 줄여 4톤급 트럭에 적용했는데 아우구스부르크 공장을 출발해 뉘른베르크까지 140㎞ 거리를 시험 주행, 5시간 후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해 자동차용 엔진 입지가 크게 넓어졌다. 결국 그해 말 열린 베를린 모터쇼에선 만(MAN)과 벤츠, 다임러가 각각 개발한 디젤 엔진 트럭이 등장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디젤엔진은 고효율의 장점이 부각되며 트럭 뿐 아니라 승용차로도 확대돼 한때 유럽 내 승용차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1936년 벤츠가 디젤 승용 260D를 선보였고 1967년 푸조는 고속 디젤로 명명하며 '204BD'를 내놨다. 1970년대 석유 파동 때 폭스바겐은 주력 차종 골프에 디젤 엔진은 얹는 등 유럽 내 완성차 제조사에게 디젤은 그야말로 주력 엔진이 됐다.

그러나 연료로 디젤을 사용하는 엔진은 늘 환경 규제의 대상이기도 하다. 연소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이 문제다. 게다가 2015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가 불거지며 디젤에 대한 불신마저 확대됐다. 결국 2000년대 초반부터 펼쳐진 '㎞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눈속임'이라는 비판이 거세졌고 강화되는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추가 기술이 적용되면서 제품 가격도 오르기 시작했다. 고효율로 디젤을 선택했던 소비자로선 제품 가격 자체 인상이 곧 경제성의 하락이었던 셈이다.

결국 최초의 상업용 디젤엔진을 생산했던 만(MAN)의 선택도 달라졌다. 만(MAN)은 최근 뉘른베르크 공장에서 상용차용 디젤엔진 생산을 개시하며 여기에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당장 중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공장에서 일정 기간 생산이 끝나면 더이상 디젤엔진을 만들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초의 상업용 디젤엔진을 만들었던 기업도 결국 디젤을 점차 멀리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형국이다. 한때 이동 수단의 주력 동력발생장치로서 주목받았던 디젤의 '헤어질 결심'을 보면 세상에 영원 불멸함이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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