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조각투자 법제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예고하자 업계에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관건은 금융당국이 리스크 관리와 투자자 보호 기준을 어떻게 내놓을지다. 금융당국은 증권사 수준의 규제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업계를 바라보는 눈높이도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금융투자업규정,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예고했다. 이 중 조각투자 발행 플랫폼을 법적 테두리 안에 포함하기 위한 내용이 포함됐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금융위는 부동산·음원 등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의 투자중개업자 인가 단위를 신설한다.
그간 조각투자사들은 금융규제 샌드박스(샌드박스) 지정으로 사업을 이어왔다. 샌드박스란 최대 4년 동안 규제 적용을 면제해 주는 제도로, 이를 통해 카사와 루센트블록, 펀블 등 주요 업체들은 비금전신탁 조각투자 증권의 발행과 유통을 동시에 해왔다. 본래 자본시장에서는 증권 발행사와 유통사를 엄격히 분리되지만, 샌드박스 지정으로 예외를 인정받은 것이다.
문제는 조각투자 제도화가 늦어지면서 샌드박스 지정 기간이 만료됐다는 점이었다. 2019년 12월 조각투자로 가장 처음 샌드박스에 지정된 카사는 2023년 12월 샌드박스 지정 기간이 만료됐고, 법령 정비 기간(규제 개선기간)인 오는 6월 17일까지 법령상 투자중개업자 지위를 얻지 못하면 아예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카사에 이어 샌드박스에 지정된 루센트블록, 펀블은 오는 4월 샌드박스 지정 만료를 앞두고 있다.
금융당국은 2023년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내놓고 조각투자 제도화를 추진해 왔지만 국회 공전으로 관련 법 개정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면서 늦어졌다. 국회 법안 처리를 기다리던 금융당국은 조각투자사들의 영업 종료가 임박해서야 당국 차원에서 할 수 있는 하위 법령 개정에 나서 제도화 길을 최소한의 범위로 마련했다. 이 개정안은 6월 16일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에 카사를 비롯한 조각투자 업체들은 아슬아슬하게 영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제 관심은 영업 조건을 규율할 후속 과제에 집중된다. 금융당국은 이번 개정안과 더불어 건전성을 위한 순자본비율(NCR)과 광고·영업 등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른 투자자 보호 관련 규제는 모두 일반 증권사와 동일하게 적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제시했다. 현재 조각투자사들은 샌드박스로 인가된 특정 기초자산만 취급할 수 있고, 부동산 선매입은 2건으로 제한된다. 상품 광고는 자사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각 증권사만 허용되고 있다.
건전성 기준과 투자자 보호 수단을 증권사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단 금융당국 지적에 일단 업계는 규제를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조각투자사 대부분 업력이 짧고 스타트업에 가까운 규모로 운영되고 있어 사업 기반이 빈약한 경우 이 같은 조건을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NCR은 자기자본 규모가 핵심인데 이를 만족하지 못할 경우 추가 자본 확대가 필요하다. 증권사 재무 건전성 판단 기준으로 사용되는 NCR은 영업용순자본을 총 위험액을 뺀 뒤 이를 자기자본으로 나눠 산출한 값이다. 현재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NCR 비율은 최소 100%지만 주요 증권사들은 이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지난해 3분기 NCR이 2134%에 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 방침대로라면 조각투자사 내부 인적·물적 확충에 나서야 한다"며 "투자중개업 인가는 사실상 증권의 유통과 공모, 주선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당국이 '이 기준을 지킬 수 없다면 아무나 이 사업에 뛰어들지 말라'고 공포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