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거시경제학 교과서는 실물부문을 중시하고 금융부문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일반균형 분석에서 실물부문이 균형이면 왈라스 법칙에 의해 금융부문도 당연히 균형인 데다가 경제학자들이 금융시장은 실물부문의 결과로서 나타나며 안정적으로 잘 작동하는 시장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금융부문에서도 심각한 불균형이 누적될 수 있고 이러한 불균형이 실물부문에 매우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최근 거시경제학은 금융부문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실물부문에 대한 분석을 중시하고 금융부문에 대한 분석을 경시할 경우 오류에 빠지기 쉬운 지표 중 하나는 국제수지이다. 국제수지표는 크게 거주자와 비거주자 간의 거래유형에 따라 크게 경상수지, 자본수지 및 금융계정으로 구성된다. 국제수지표가 복식부기원칙에 의해 작성되고 자본수지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경상수지가 흑자와 금융계정 순자산 증가는 동시에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순자산이 경상수지 흑자와 비슷한 규모로 증가한다. 이 경우 국제수지표를 보고 경상수지가 흑자라서 금융계정의 순자산이 증가한 것인지 금융계정의 순자산이 증가하여 경상수지가 흑자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실물부문에 대한 분석을 중시하면 경상수지 흑자의 원인을 수출기업의 생산성 증가나 경쟁력 제고 등에 따른 해외수요의 증가로 단정하면 다른 금융요인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경상수지 흑자와 동시에 금융계정의 순자산이 증가하는 것은 대부분 두 계정의 변동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환율의 움직임을 통해 주된 원인이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는 있다. 경상수지 흑자는 외환 공급을, 금융계정의 순자산 증가는 외환 수요를 나타내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 요인이 큰 경우 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금융계정의 순자산 증가 요인이 큰 경우 원화가 약세를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규모와 금융계정 순자산은 크게 증가하였다. 동 시기에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상승세를 보였으며 지난해에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었다. 이는 금융계정의 순자산 증가요인이 금융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에 크게 기여하였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금융계정 순자산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해외 투자자금은 크게 연기금과 금융기관의 해외 자본 및 부동산 투자, 서학개미의 해외주식투자, 그리고 기업의 해외직접투자로 구분된다. 하지만 해외 투자자금이 증가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변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6.25 전쟁 종전 다음 해인 1954년부터 1971년까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때 태어난 세대가 본격적으로 퇴직하기 시작한 시점을 금융위기 직후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중장년기에 저축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고 퇴직금 제도의 특성상 직장을 그만두거나 정년퇴직을 앞둔 근로소득자의 금융자산 운용규모가 크게 증가한다. 가계의 해외투자자금도 이로 인해 크게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이후의 저금리도 가계가 직접 투자든 펀드 등을 통한 간접투자든 해외로 운용하는 투자자금을 확대하는데 기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표적인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적립방식 연금제도의 특성으로 인해 기금 규모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1988년에 도입되었기 때문에 아직은 국민연금을 납입하는 가입자 대비 국민연금을 받는 수급자 비율이 30%에 불과하고 수급자들의 가입기간 또한 짧아 1일당 수급액도 적은 편이다. 국민연금기금은 규모가 확대되면서 해외투자를 늘려왔으며 2024년말 현재 해외투자금액이 기금규모의 58%인 700조원 이상에 이르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해외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 노동력을 이용하거나 환율 변동 위험을 낮추기 위해 해외에 신규 생산시설을 확대해왔다. 특히 2017년 트럼프의 미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자국내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보조금이 확대되거나 관세장벽이 강화되면서 수출기업들이 현지 투자와 생산을 늘려야 할 필요성도 크게 확대되었다.
인구구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를 경험하였던 우리 경제의 입장에서 경상수지 흑자와 대외순자산 증가는 좋은 소식으로 들린다. 다만 베이비붐 세대가 완전히 은퇴한 후에는 현재의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 경제상황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