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될 동물은 불필요한 고통 겪어도 될까, 국내 첫 도축장 동물복지평가해보니

2025-01-30

돼지들은 눕기는커녕 앉지도 못할 정도로 밀도가 높은 통로에서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한 채 서있어야 한다. 기절, 방혈 과정을 거치기 위해 사람들이 억지로 태우는 컨베이어벨트에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는 동료들이 많다보니 밤새 계류장에서 공포에 질려 있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트럭에서 내리다 넘어진 소들은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된 채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모두 도축장에 도착한 농장동물들이 실제 도축당하기 전 겪어야 하는 일들이다.

30일 동물권단체 동물을위한행동 전채은 대표가 건국대 수의과대학에 제출한 ‘소와 돼지 도축장의 동물복지평가 연구’ 주제의 박사 학위 논문을 보면 도축장에서 도착한 소와 돼지들은 도축되기 전 불필요한 학대와 열악한 환경 등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경우가 다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 도축장 동물의 동물복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물권단체 활동가가 동물복지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논문을 보면 도축장 도착·하차·계류장·기절·방혈 등 과정에서 동물들이 겪는 고통의 정도를 A~E등급으로 나눠 정성적으로 평가한 결과 대기 및 도축 과정에서 벌어지는 학대로 인해 소는 D, 돼지는 E에 해당하는 고통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A는 고통이 없는 경우를 의미하고, D는 심한 고통, E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를 의미한다.

동물들이 도축 전 대기하게 되는 계류장에서 받는 고통은 D등급으로 나타났다. 도축 공정 전반에서 받는 고통은 소가 C, 돼지가 D로 평가됐다. 대체로 돼지 도축장의 동물복지가 소 도축장보다 열악한 것이다. 전 대표는 2020~2022년 사이 소 6곳, 돼지 7곳 등 전국 13개 도축장을 실제 방문 조사한 뒤 동물복지 수준을 평가했으며, 평가에는 수의사 2명도 참여했다.

구체적으로 전 대표는 트럭과 계류장의 밀도, 급수기 존재 여부, 소와 돼지의 공포 반응, 기절 시 완전히 의식을 잃는지 등 도축되기 전까지 돼지와 소의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도축장으로 운반된 돼지, 소 등은 트럭에서 내릴 때, 컨베이어벨트에 탈 때, 도축되기 전 대기하는 동안 등에 큰 고통을 겪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 대표는 특히 작은 배려로 동물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있는 장치들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트럭에서 내릴 때 쓰는 하차대에 작은 턱만 있어도 소들이 미끄러지지 않을 수 있는데 이런 사소한 장치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동물복지 선진국인 유럽연합의 경우 도축장 내 동물복지 평가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도입돼 있지만 국내에서 도축장 동물복지는 아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동물보호법에 도축 관련 규칙이 있긴 하지만 조사·단속 근거는 물론 도축장 복지의 평가 방법, 주체 등도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논문에서는 돼지나 소 등이 지나치게 밀도가 높고, 환기장치·급수장치 등이 없는 계류장에서 긴 시간을 겪는 점도 지적됐다. 도축장에서 돼지들이 컨베이어벨트에 안 타려고 버티는 사례가 많은데 이로 인해 속속 다른 트럭이 도착하면서 돼지들을 가득 태운 트럭이 도축장 밖에 줄지어 늘어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트럭에 실려온 돼지들은 당일 내에 도축되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기다리게 된다. 돼지들은 밀집된 상태에서 밤새 서있으면서 물도 못 마신 채 공포에 질린 채 다음날까지 고통을 겪어야 한다. 집계 결과 도축장 도착 후 돼지들이 도축되기까지 짧게는 4시간에서 길게는 15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돼지들이 컨베이어벨트에 잘 탈 수 있도록 도와 당일 내에 도축하는 것이 돼지들을 위하는 일인 셈이다.

소의 경우도 하차 때, 계류장을 지나 기절시키는 공간으로 가는 사이 공포반응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을 줄여주는 것이 역시 소를 위하는 일이지만 돼지처럼 다음날까지 방치되는 사례가 국내 도축장들에서는 발생하고 있다. 특히 트럭에서 내리다 넘어진 소들은 골절 등 부상을 입은 상태로 도축되기 전까지 심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전 대표는 도축장 동물복지를 향상시킬 방안으로 “도축장 동물복지 평가와 관련한 제도적 개선과 동시에 동물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닥을 미끄럽지 않은 소재로 바꾸는 것과 밀집도를 낮추고, 환기장치를 마련하는 것, 하차대와 컨베이어벨트 등에 동물들이 수월하게 탈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 등을 급선무로 꼽았다.

전 대표는 “이 논문의 의미는 국내 최초로 도축장의 과학적 동물복지평가를 시도하였다는 점”이라며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노력뿐 아니라 과학적인 분석과 평가도 동반해야만 동물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육식을 하는 인구가 채식 인구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육식을 하는 이들은 대신 손에 피를 묻히는 도축 작업자들을 존중해야 하지만 도축장 직원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면서 “작업자들을 위해서라도 동물이 고통을 받게 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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