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제 이대로 괜찮나

2025-02-06

요즘 보수 진영 일각에서 ‘부정선거론’과 관련해 사전투표 폐지 주장이 나온다. 사전투표가 부정선거의 온상이기 때문에 없애자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부정선거론’은 비과학적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본다. 하지만 사전투표에 대해선 ‘부정선거론’과는 전혀 별개로 문제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처음 실시된 사전투표는 투표율을 올리는 데 기여했다. 전체 투표 가운데 사전투표의 비중은 2022년 대선 때 47.9%였고, 2024년 총선 때는 46.7%였다. 앞으로 이 비중이 50%를 넘는 경우도 생길지 모른다. 사실상 1차 투표(사전투표), 2차 투표(본투표)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전투표자가 급증하면서 전체 선거 시스템이 왜곡되는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평등 선거’는 모든 유권자가 똑같이 1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여기엔 모든 유권자가 동등한 환경에서 투표를 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가령 대선 때 서울에선 선거운동 기간이 23일인데 부산은 20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규정 무력화

사전투표-본투표 정보격차 발생

투표율엔 경품이 더 효과적일 수도

하지만 사전투표에선 이 원칙이 무너진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의 공표를 금지하는데 사전투표는 선거일 4~5일 전에 실시된다. 따라서 사전투표자는 직전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투표를 하는 것이어서 이들에겐 여론조사 공표 금지가 무력화된다. 예를 들어 2022년 3월 9일 치러진 지난 대선 때 여론조사 공표 금지는 3월 3일부터였다. 그래서 3월 2일까지 실시한 최종 여론조사 결과가 3월 3일 저녁부터 언론에 공표됐다. 대부분의 신문엔 3월 4일 아침에 보도됐다. 3월 4~5일 사전투표에 참여한 1632만 명의 유권자는 생생한 최종 여론조사 결과가 머릿속에 입력된 상태에서 투표했을 것이다. 반면에 3월 9일 투표한 1748만 명(재외국민ㆍ선상ㆍ거소 제외)은 이른바 ‘깜깜이 기간’이라 최근 여론 동향을 모른 채 투표소에 갔다.

여론조사 결과는 표심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대선 때 명태균씨가 여론조사를 열심히 ‘마사지’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1632만 명과 1748만 명 사이에 여론조사 정보격차가 발생한 상황은 확실히 불합리하다. 사전투표 비중이 얼마 안 되면 무시하겠지만, 지금은 사전투표와 본투표의 정보격차가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 대선은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인 3월 3일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성사됐기 때문에 ‘깜깜이 기간’에 여론이 크게 요동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여론조사 공표 금지 규정이 없었다면, 그래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양자 대결 여론조사가 선거 당일까지 계속 발표가 됐더라면 선거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사전투표와 본투표 사이에 유권자의 선택을 바꿀 만한 중대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사전투표엔 그런 변수가 반영 안 되는 것도 근본적 문제다. 가령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사전투표 실시 이후에 사퇴했다면 얼마나 많은 사표가 발생했겠나. 사전투표 때문에 선거운동 기간이 실질적으로 4~5일 감축되는 것도 부작용의 하나다.

사전투표의 유일한 의의는 투표율 제고다. 그를 위해 많은 예산을 쓴다. 지난해 총선 때 사전투표 예산은 687억원으로 오히려 본투표 예산(680억원)보다 많았다. 그런데 차라리 사전투표에 쓸 돈으로 투표율을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바로 경품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예산 687억원을 지난해 총선 전국 투표소 3565곳으로 배분하면 한 곳당 평균 1927만원꼴이다. 본투표 때 투표소마다 10만원짜리 지역상품권을 192장씩 추첨으로 나눠준다고 해보자. 투표율이 상당히 올라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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