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미·중 혁신전략과 한국의 슘페터 방식 해법은

마르크스(1818~1883)가 사망하던 해에 태어난 슘페터(1883~1950)는 혁신 경제학의 태두다. 창조적 파괴, 과학기술 혁신 등 오늘날 핫한 개념들을 경제학에 녹여 넣은 인물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쉽게 붕괴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이윤율이 떨어지는 것 자체를 자본주의 붕괴의 조짐으로 성급하게 해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곳에서 창조적 파괴, 즉 혁신이 일어날 수 있음을 간파했다.
그런 슘페터의 주장도 시간의 흐름 속에 무게중심이 바뀌었다. 젊은 슘페터는 초기 저작 『경제발전의 이론』(1911)에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가 혁신의 주인공임을 밝혔다. 반면, 나이 든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1942)에서, 연구개발(R&D) 센터를 보유한 대규모 기업 조직이 혁신을 주도한다고 봤다. 제자들은 전자를 ‘슘페터 I’, 후자를 ‘슘페터 II’로 불렀다.
최고기술 아니어도, 낮은 사양 적은 요소 투입으로도 성공 가능
거대 인프라 투자와 세계 최고 기술이 지배한다는 믿음에 균열
중국의 과학기술 올인은 슘페터와 멀어지고 마르크스를 재소환
한국, 가격·성능 아닌 창의성 등 소프트팩터를 산업에 주입해야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이 슘페터 I, II를 입맛에 맞게 인용했지만, 그에 관한 불편한 진실은 감췄다. 자본주의가 결국 붕괴하리라는 슘페터의 전망이 그것이다. 슘페터는 혁신 활동이 일상화된 기술개발 활동으로 치환되고, 업무가 비인격화·자동화되고, 관료와 위원회의 역할이 커지면서, 야성적 기업가의 역할이 약화해 자본주의는 종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슘페터의 자본주의 종말론은 우선 미국에 우울한 전망이었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중국에는 축복인 듯 보이지만, 슘페터가 가리킨 사회주의는 역동성과 생명력이 사라진 세상으로의 전락이었기에 중국에도 달가운 주장은 아니었다.
슘페터가 예상치 못한 ‘플랫폼 경제’

75년 전 세상을 뜬 슘페터가 내다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플랫폼 경제’의 도래였다. 강력한 R&D 센터를 갖춘 대형 기업 외에도 소규모 창업기업들이 함께 혁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혁신 생태계의 탄생 말이다. 이 단계를 필자는 ‘슘페터 III’라 명명하였다(은종학, 2021). 그리고 미국과 중국은 공히 ‘슘페터 I, II, III 단계를 지나 어떤 사회로 나아갈 것이며 또 그 사회의 역동성과 생명력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아야 하는 ‘슘페터리언 챌린지(Schumpeterian Challenge)’ 앞에 설 것으로 보았다.
마침내 슘페터 III 단계, 즉 플랫폼 경제 시대가 무르익자 미국과 중국은 같은 고민 끝에 다른 선택으로 갈라졌다. 플랫폼은 본질적으로, 더 큰 규모의 주체가 더 높은 효율성을 갖는 ‘규모의 경제’ 효과가 커서 필연적으로 독점이 생긴다. 그 결과 국가는 그러한 독점을 어찌 다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시진핑의 중국은 플랫폼 기업에 대한 당·국가의 지배를 강화하고 기업 자체를 부분적으로 사회화함으로써 독점의 골칫거리를 체제 내로 흡수하고 동시에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진전시키는 길을 택했다. 반면 미국은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글로벌 독과점 사업자인 자국 기업들을 (시장·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지지하기 어렵고 (국익·현실주의적 관점에서는) 억압할 수만도 없어 정책적 지향에서 혼선을 빚는 듯했다.
기업가 야성 되살리려는 미국

하지만 트럼프 2기 미국은 분위기를 쇄신했다. 미국 내 인공지능(AI) 인프라를 대규모로 확충하는 5000억 달러(720조원)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화성 및 우주 개척 프로젝트 등을 띄우며 대형 기업들로 하여금 새로운 거대 벤처 프로젝트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 야심 찬 거대 프로젝트로 대형 기업들의 기업가적 야성을 되살리려 한다는 점에서 슘페터 II와 슘페터 I의 융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 2기 미국의 응답과 선택은 며칠 지나지 않아 중국발 서프라이즈에 스텝이 꼬였다. 중국 항저우의 벤처기업 딥시크(DeepSeek)가 출시한 경량 AI 모델 V3와 R1이 미국 빅테크들이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 넣으며 개발한 AI 모델들에 별반 뒤처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또한 딥시크는 신규 AI 모델들의 소스코드를 공개해버림으로써, 비공개 소스코드를 최고의 자산으로 삼아 높은 이익을 추구하는 미국 빅테크들의 성채 한 측면을 붕괴시켰다.

이 일로 딥시크의 창립자 1985년생 량원펑은 1월 말 리창 총리 주재 하의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초청을 받았다. 2월 중순에는 인민대회당에 마련된 민간기업 좌담회에서 시진핑과 악수하며 일약 중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과거 미국 국방성이 개발한 폐쇄적 아르파넷을 전 세계에 개방하여 오늘날 인터넷을 탄생시킨 미국 서부의 자유주의자들과 일견 비슷하지만, 국가의 통제를 단호히 거부했던 그들과는 다른 애국주의적 영웅이 되었다.
딥시크 성공엔 플랫폼 기업과 국가 역할
2023년 설립된 딥시크가 미국의 빅테크에 효과적으로 응전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플랫폼 기업들(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후원하고 또 그 뒤에서 빅 브라더 국가가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의미 있는 것은, 딥시크의 성과가 거대한 규모의 인프라 투자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이 모든 것을 지배하리라는 믿음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낮은 사양의 적은 요소 투입으로도 ‘괜찮은(good-enough)’ 제품을 시장에 선보여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이른바 ‘검약식 혁신(frugal innovation, F.I.)’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의 기술통제 속에서 최고의 기술은 아니어도 중국에 가용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A.T.)’의 활용이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의 프리미엄 혁신전략이 중국의 F·I·A·T 혁신전략에 의해 도전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스스로 증명한 이런 가능성 위에서 중국은 앞으로도 ‘과학기술 자립자강’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중국 기술통제 속에, 과학기술 솔루션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절실한 필요가 생겼고, 강화된 과학기술 역량은 향후 대미 협상력의 근간이기도 하리란 믿음에서다.
주목할 것은, 최근 중국의 과학기술 올인(all-in)이 1990년대 말 이래 줄곧 정책적으로 추구했던 슘페터와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빈자리에 중국은 마르크스를 다시 소환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강조하는 신개념 ‘신질(新質) 생산력’에는 마르크스의 ‘생산력-생산관계’ 이론, 즉 역사적 유물론이 배어 있다. 순진한 관찰자들의 인식과 달리, 그것은 그저 품질과 생산력을 높이겠다는 실용적 구호가 아니라, 생산력을 높여 자본주의보다 한 차원 더 고도화한 생산관계, 즉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뜻이 담긴 개념이다. 중국은 그렇게 슘페터가 태어나기 이전의 마르크스로 회귀·역행하고 있다.
이처럼 슘페터 III 단계를 거친 미국과 중국이 공히 과학기술을 중시하지만, 미국은 슘페터 I과 II의 융합으로, 중국은 슘페터 이전의 마르크스로 분기(分岐)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미국도 중국도 한국의 모델 못 돼
분명한 것은 미국 모델이든 중국 모델이든 그대로 복제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강화된 과학기술 역량에 자극받아 우리도 과학기술에 올인해야 한다고만 되뇐다면 그건 아직 길을 찾지 못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과학기술만으로는 이제 한국이 중국에 경쟁우위를 강력히 구축할 수 없다. 사회·문화·사상적 통제가 짙어진 중국에서 과학기술 연구만큼 자유로운 곳은 없으며 그에 자본과 인재가 집중되고 있다. 과학기술이 자유와 민주를 먹고 자라는 것은 아니다. 과거 일본 제국이 만주 침략~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과학기술을 꽃피웠듯 말이다. 더욱이 중국 정부의 R&D 예산은 한국 정부의 (국방, 복지 등을 모두 포함한) 예산 총액보다도 훨씬 크다. 그 커다란 격차를 우리의 과학기술 부문이 단독으로 극복할 수 없다.
과학기술 당사자도 아닌 이들이 과학기술에만 기대를 건다면 그것은 기우제를 지내는 꼴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질 대박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비과학기술 분야의 주체들이 나서서 제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중국의 한계가 사회·문화·사상의 경직성이라면, 한국은 그 분야의 유연성을 발휘하는 데 초점을 맞춰 대중국 경쟁우위를 디자인해야 한다. 한국이 가진, 특히 중국에 비해 강한, 소프트팩터(soft factor)를 세심히 추출하여 한국의 주력산업에 녹여 넣어야 한다. 기존의 주력산업을 넘어 새로운 주력산업을 그 DNA로 키워내야 한다. 소프트팩터는 문화적 코드뿐 아니라 창의적 디자인, 제품에 융합된 서비스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흔히 ‘가성비’(가격-성능 비율)라 하면 값싼 제품만을 칭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고가의 고성능 제품’도 가성비로 제품을 규정한 것이다. 소프트팩터는 가격(경제), 성능(기술) 외에 선택의 이유가 되는 제3의 요인이다.
중국에서도 배울 게 있다. 요즘 중국의 창업기업들은 폭넓은 시야를 갖춘 디자이너를 공동창업자로 최고경영층에 참여시킨다. 엔지니어보다도 디자이너를 더 높이 샀던 스티브 잡스의 접근법을 샤오미 등이 모방하며 확산한 것이다. 그런 실천은 우리도 받아들여 심화해야 한다. 국가의 산업정책, 광역 지역의 공간설계, 기업의 전략기획 등 최고위 디자인에 한국의 소프트팩터를 녹여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슘페터의 키워드는 ‘혁신(innovation)’이라고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책에서 ‘새로운 조합(new combination)’이란 말을 혁신보다 훨씬 즐겨 썼다. 그리고 혁신에 항상 과학기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새로운 조합을 모색하는 데 있어 곱씹어 볼 대목이다. 미-중 분기의 시대, 과학기술 편중의 시대에 한국이 남다른 경쟁우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너머의 것을 보고 중히 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한국에도 닥친 슘페터리언 챌린지에 대한 현명한 응전이다.
◆은종학 교수=칭화대 기술경제경영학 박사. 현대중국학회 회장. 『중국과 혁신』(2021) 등의 책을 썼다.
은종학 국민대·중국정경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