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편향돼 못 믿겠다”거나
질 것 같다고 ‘부정배트’ 우기면
승패 떠나 야구 하지 말자는 것
공동체의 합의된 기준은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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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작전은 이랬(을지도 모른)다. 12-3으로 뒤진 6회, 아무리 해도 경기 흐름이 바뀔 것 같지 않다.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똑바로 치라”고 화를 내보지만, 타자들은 연신 헛스윙만 해댄다. 판을 뒤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 잘 듣는 노장 후보 투수를 불렀다.
“투수를 너로 교체할 테니, 올라가서 빈볼을 던져. 대가리를 맞히란 말야.”
투수가 빈볼로 타자 머리를 맞히고 상대팀이 화를 내면 선수들이 모두 더그아웃을 박차고 뛰어 나가서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킨다. 몸싸움으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 후보 투수의 다른 후배를 시켜서 상대 더그아웃에 몰래 들어가 방망이를 훔치게 한다. 그 방망이를 검사해서 부정 배트의 흔적을 확인(하거나 증거를 만들어내게)한 뒤 “이것 봐라, 부정 배트다. 상대팀이 낸 12점은 모두 무효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3-0에서 경기를 이어가는 게 정당하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우리 팀 팬이라면, 우리가 이겨야 하니까 이 정도는 다 이해하고 지지해 줄 것이라 믿는다. 유튜브에서 봤다. ‘부정 배트 의혹’의 증거가 뚜렷하다. 나뭇결 무늬가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된다는 게 증거다. 형상기억배트라는 주장도 믿음이 간다. 그 배트가 아니라면 우리 팀 투수들이 저렇게 두들겨 맞을 리가 없다. 부정 배트만 확인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실제로는 이렇게 됐을 거다.
아직 6회지만 12-3이니까 후보 투수가 패전 처리로 등판하는 것은 그나마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위협구를 던지는 것, 게다가 머리를 맞히는 건 야구에서 금기다. 한쪽으로 기운 경기, 맞지 않더라도 머리 근처로 향하는 공에 심판이 퇴장 명령을 내리는 건 당연하다. 감독이 뛰어나가 “부정 배트 의혹에 대한 경고성이다”라고 항의해보지만 야구에서는 빈볼 위협만으로도 퇴장이다. 당연히 항의하는 감독도 퇴장이다.
퇴장 명령에 불복해 감독이 더그아웃에 남아 있거나, 선수단을 철수시킨다면 규칙상 몰수패를 당한다. 3-0에서 경기가 이어지는 게 아니라 0-9로 패배가 확정된다.
선수와 감독 퇴장에 불만을 품은 팬이 그라운드에 뭔가를 집어던진다면, 야구장 경비요원이 바로 가서 해당 팬을 야구장 밖으로 내보낸다. 그라운드 난입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예 야구장에 못 오도록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진다.
지난해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뉴욕 양키스 팬 2명이 다저스 우익수 무키 베츠의 수비를 방해했다. 양키스 글레이버 토레스의 뜬 공을 잡기 위해 펜스 근처에서 베츠가 점프했을 때 한 명이 베츠의 글러브에서 공을 빼앗았고, 또 다른 팬은 베츠의 맨손을 붙잡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심사를 거쳐 해당 팬 2명에 대해 ‘메이저리그 모든 구장, 사무실 및 기타 시설 출입을 무기한 금지하고, 메이저리그가 주최하거나 연관된 모든 행사에도 참여를 금지한다’고 결정했다.
부정 배트가 의심된다면, 빈볼을 던질 게 아니라 심판에게 방망이를 검사해 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경기 중이라도 심판이 배트를 가져와 확인할 수 있다. 한국프로야구에서도 배트를 잘라서 검사한 적이 있다.
“심판이 편향됐다. 심판도 못 믿겠다”고 주장하면 프로스포츠는 대개 규정에 따라 해당 발언에 커다란 벌금을 물린다. 미국프로농구(NBA)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 마크 큐반은 경기 뒤 심판 판정을 비판했다가 50만달러 벌금 징계를 받았다. 그 비판도 판정이 상대팀에 편향됐다는 게 아니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주장이었다.
빈볼을 금지하고, 경기 방해에 철퇴를 내리고, 심판 판정 비판에 무거운 벌금 징계를 내리는 건 야구를, ‘리그’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자 이를 위해 합의된 기준이다. 이걸 모두 무시하는 것은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야구를 하지 말자는 뜻이다. 야구의 공정성, 리그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의도되고 선 넘는 행위에 대해 야구는 ‘영구 제명’이라는 엄벌을 내린다.
승리를 위한 노력은 야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훈련을 하고 기술을 닦고 새로운 전략을 세우는 여러 노력들이 야구를 치열하고 재밌게 만들어왔다. 하지만 우리 팀이 질 것 같으니까 빈볼을 던지고 부정 배트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야구를 하지 말자는 얘기다. 우리는 계속 야구를, 정정당당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멋진 야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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