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시장격리에도 ‘쌀 초과 생산’에 시달리는 한국과 대비되게 ‘쌀 품귀 현상’을 맞은 일본. 수급 상황에 영향을 준 기저 원인으로 ‘소비’가 꼽힌다. 한국은 예상보다 쌀 소비가 가파르게 감소했지만, 일본은 관광객 증가 등에 힘입어 수요가 되레 늘었기 때문이다.
쌀 수급 예측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쌀 소비 경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통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쌀값 폭락 사태의 원인으로 급격한 소비 위축이 언급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8월 네번째 시장격리 카드를 꺼내 들면서 쌀값 하락의 원인을 ‘소비 감소’로 설명했다. 소비량이 예상보다도 빠르게 곤두박질치며 남는 쌀이 많아졌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통계를 통해 추측하는 ‘예상’ 소비량과 ‘실제’ 소비량 사이에 간극이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통계청이 매년 1월께 발표하는 ‘양곡소비량 조사’는 쌀 소비량을 파악하고 초과 생산량을 가늠하는 기초자료가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의 쌀 소비량 감소폭은 다소 완화됐다. 가구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추이를 살피면 소비량 감소율은 2019년 3.0%에서 2020년 2.5%, 지난해 0.6%로 줄었다.
최재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최근 학술지 ‘농촌경제’에 발표한 ‘양곡소비량 조사 진단과 개선 방향’에서 “2017년 이후 최근으로 한정해서 보면 ‘쌀 생산량 조사’ ‘양곡소비량 조사’를 기준으로 수치상 공급과잉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수급상 괴리가 크지 않음에도 최근 몇년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쌀 가격 하락 문제는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양곡소비량 조사’ ‘쌀 생산량 조사’를 중심으로 도출되는 공급과 수요의 차이에 대한 정보가 정확한지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현재 통계로는 쌀 소비 추이를 면밀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종인 인천대학교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 교수는 “(통계청의 양곡소비량 조사는) 소비 총량을 알기 위한 조사로서 의미가 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소비 행태를 알기 어렵다”며 “좀더 다양한 각도에서 쌀 소비 행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쌀 소비 경향을 조사하고 이를 정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쌀 소비 동향 조사’를 매달 발표한다. 월평균 비농가 약 2000가구를 대상으로 ▲1인당 월 소비량(가정식, 중·외식) ▲구매 경로 ▲구매 경로별 가격 등을 조사하는 식이다. 일본 공익사단법인 미곡안정공급확보지원기구가 2011년부터 조사를 이어오고 있다.
실제로 조사에서는 ‘중식’을 선호하는 일본인의 쌀 소비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중식은 집밥과 외식의 중간 형태로, 반찬·도시락 등을 사와 집에서 하는 식사를 의미한다. ‘쌀 소비 동향 조사’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가구 쌀 소비 비율은 가정 내(66.3%), 중식(21.2%), 외식(12.6%) 순이었다. 2013년 3월에는 각각 68.5%·17.7%·13.8%를 기록했다.
김 교수는 “농가소득을 올리기 위해 고품질 쌀을 생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반 대중들의 소비 경향을 파악하는 작업도 중요하다”며 “(일본은) 일관된 조사 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소비 트렌드를 파악하기 쉽다”고 했다.
이런 쌀 소비 동향 조사는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도 활용된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중식용 제품 생산에 적합한 품종 개발과 보급을 지원하는 식이다.
김 교수는 “일본의 경우 소비 측면에서 중식 수요가 늘고 있는데, 생산 현장에서는 고품질 쌀을 생산하려는 경향이 있어 미스매치(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며 “실제 중식용 쌀의 공급가격이 꽤 올라갔는데 (이런 실태 진단을 통해) 정부는 새로운 쌀 소비에 맞는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도 일본처럼 정책과 연계성을 높일 수 있는 실태 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비농가 표본 확대가 과제로 언급된다. 지난해 기준 ‘양곡소비량 조사’ 가구부문 대상(1400가구) 가운데 농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36%(500가구)에 달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농가인구는 208만9000명으로 총인구(5177만5000명)의 약 4%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농가 표본이 과다 대표돼 쌀 소비량이 부풀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농가의 1인당 쌀 소비량은 85.2㎏으로 비농가(55.0㎏)보다 1.5배가량 많았다.
쌀 소비 동향을 알아낼 수 있도록 조사 항목을 개편하자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한 전문가는 “식량 정책의 효과를 높이려면 소비자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이런 변화가 일시적인지 추세적인지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국내에도 쌀 소비 관련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 설계되지 않았을뿐더러 파악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다”며 “식량 정책에 필요한 정보를 담아낼 수 있도록 조사 항목이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소진 기자 sjkim@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