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은 왜 비쌀까···영화 ‘파묘’, 천만영화의 비밀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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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와 희귀제

파묘(破墓)는 한국인들에게는 오컬트(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ㆍ초자연적 현상)적 요소가 강하다. 남의 묘는 말할 것도 없고 직계인 가족의 묘도 함부로 손대는 것이 꺼려진다. 어쩔 수 없이 파묘를 해야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이른바 손없는 날을 잡아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는 2024년 코로나19이후 고사 직전까지 몰렸던 한국영화와 극장을 살린 작품이다. 파묘는 개봉 32일만에 1000만 관객을 넘어서며 2024년 첫 천만영화가 됐다. 최종 관객수는 1191만명. 악령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오컬트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한국 영화사상 처음이었다.

개봉 32일 만에 ‘천만영화’된 첫 오컬트 영화

‘음과 양, 과학과 미신, 바로 그 사이에 있는 사람. 나는 무당 이화림이다’

화림(김고은 분)은 법사 봉길(이도현 분)과 함께 미국 LA에 사는 재미교포 박지용의 초청을 받는다. 그는 눈을 감으면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고 목을 조르는 가위에 시달린단다. 형이 그랬고, 지금은 자신이 그렇고, 외동인 갓난아기가 그렇다. 하림의 눈에 이는 영락없는 핏줄돌림이다. 원인은 묘를 잘못쓴 ‘묫바람’. 화림의 진단을 들은 지용은 조부묘의 이장을 부탁한다. 이장비는 5억원이다.

이장은 혼자할 수 없다. 화림은 풍수사(지관) 김상덕과 장의사 고영근과 팀을 이룬다. 묘는 북한과 가까운 강원 북부 외진 곳에 있다. 비석에는 이름도 씌여있지 않다. 주변을 둘러보던 상덕은 깜짝 놀라 되돌아 나온다.

“40년 땅 파먹고 살았지만 여긴 듣도보도 못한 음택이야. 악지 중 악지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저런데 잘못 손댔다가는 지관부터 이장한 사람까지 싸그리 줄초상나 이사람들아!”

풍수(風水)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람과 물’이라는 뜻으로 산천, 수로의 모양을 인간의 길흉화복에 연결시켜 설명하는 사상이다. 이를 체계화한 것이 풍수설, 혹은 풍수지리설이다. 근대 지리학이 들어오기 전에는 지리설로 불리며 사실상 지리학의 자리를 대신했다. 풍수는 집터와 묘지, 조경,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한국인의 삶에 상당한 영향력을 여전히 행사하고 있다.

서린동 SK그룹 본사는 건물 밑 네 기둥에 거북 발 문양이 있고, 청계천 쪽으로 향한 정문 앞에서는 거북 머리를 상징하는 검은 돌이, 후문 족에는 꼬리를 뜻하는 삼각문양이 있다. 건물 전체를 거북이 떠받치고 있는 형태로 물기운을 받기 위해 청계천을 향하는 것으로 설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서초사옥, LG트윈타워, LG전자 서초 R&D 캠퍼스, LS용산타워, 미래에셋본사, 신한금융지주 본사 등 굴지의 대기업들도 본사 건물을 짓거나 매입할 때 풍수를 상당히 고려했다.

산자와 죽은자들을 위해 땅을 찾고 땅을 파는 사람이 풍수사(지관)다. AI에 빅데이터까지 과학과 이성이 점점더 발달하면서 풍수는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가톨릭과 기독교는 전통적인 사상으로서 풍수의 위상을 빠르게 해체시키고 있다. 이래서는 풍수사가 먹고 살수 있을까. “미신이다 사기다 다 X같은 소리지. 대한민국 상위 1%에게 풍수는 종교이자 과학이야” 영화 속 풍수사 상덕은 말은 풍수사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풍수사가 골라주는 명당값은 여전히 세다.

명당, 씨가 말랐다?

명당은 수요감소보다 공급감소가 더 빠른 재화다. 풍수에 기인해 조선의 수도 한양이 정해진 이후 풍수는 조선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다. 유교가 확산되면서 매장도 급증했다. 그러면서 명당은 빠르게 소진됐다.

“매년 한국에서 평균 25만명이 죽는단 말야. 그중 30%를 매장하고. 조선시대부터 이 좁아터진 땅에 좋다는 곳 마다 그 많은 사람 묻었을 것 아녀요? 그런데 아직도 명당이 척척 나온다는게 (말이 돼?)” 장의사 영근의 말에 상덕이 답한다.

“(내가 전에 잡아준 땅은) 딱 65점짜리지. 이제 씨가 말랐어”

한반도에서 토지는 공급량이 제한돼 있다. 여기에 ‘좋은땅’은 더 귀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양이 부족한 자원을 경제학에서는 희귀제(Scarce Goods)라고 부른다. 희귀재는 자연자원이든 인위적으로 생산된 것이든 상관없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모든 자원을 의미한다. 토지 뿐 아니라 시간, 노동력, 자원 등이 희귀재에 속한다.

희귀재는 경제재(Ecomomic Goods)의 일종이다. 경제재란 유한 공급량을 가지며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사용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말한다. 사람들의 갖고자 하는 욕망인 희소성이 얼마냐에 따라 가격이 결정이 된다. 명당처럼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적다면 가치는 급등할 수 있다. 풍수사가 먹고 살수 있는 이유다.

경제재의 반대편에는 자유재(Free Goods)가 있다. 무한히 공급돼 누구나 비용없이 사용할 수 있는 재화다. 대표적으로 공기, 햇빛, 물, 자유 등이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 쓸 수 있고, 희소성이 없어 가격이 책정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화의 성질은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재가 자유재가 되기도 하고, 자유재가 경제재가 될 수도 있다. 환경오염이 심해지면서 공기와 물은 점차 돈을 주고 소비해야 하는 경제재가 되고 있다. 해양심층수나 빙하수처럼 ‘아주 맑은 물’은 값비싼 희귀재가 되고 있다. 사실 이미 대부분의 생수는 같은 양의 원유보다 가격이 비싸다.

반면 명당은 점차 희귀재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있다. 화장 문화가 사실상 정착되면서 매장용땅에 대한 욕망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터에 대한 수요도 예전만 하지 못하다. 특히 풍수에 민감했던 창업1세대들이 모두 물러나고 3세, 4세 CEO가 들어서면서 대기업들도 명당에 대한 관심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영화 <파묘>는 그 소재만으로도 희귀한 영화다. 하지만 무속신앙에 머물지 않고 일제강점기 한반도 역사와 결합하면서 희소성이 더해졌다. 극중 인물인 이화림, 윤봉길, 김상덕, 고영근, 오광심, 박자혜는 모두 독립투사의 이름이다. 화림의 차량번호 1945, 관을 옮기던 운구차번호 0815, 상덕의 차량번호 0301은 독립과 광복을 떠올리게 하는 숫자들이다. 영화 <파묘>가 천만영화가 된 데는 오컬트적 재미와 역사적 의미를 적절히 가미해 희소성을 극대화시킨 것이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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