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시선으로 세상에 대한 감각, 세밀하게 형상화

2025-02-13

무지개 눈|

김숨 지음 |민음사 |236쪽 |1만7000원

“내가 보고 있던 무지개가 하늘에 뜬 무지개가 아니라는 걸, 내 흔들리는 눈동자에 뜬 무지개라는 걸 나는 도에게 말하지 않았다. 내 오른쪽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고 햇빛이 사선으로 비쳐 들면 무지개가 뜬다. 눈동자가 진동 속에 있는데다 사시여서, 햇빛이 눈동자에 맺힌 눈물방울을 통과할 때 굴절과 반사가 일어나며 무지개가 뜨는 걸 거다.”

김숨 작가의 연작소설집 <무지개 눈>이 출간됐다. 다섯 명의 시각장애인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들의 감각적 경험과 내면을 세밀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선천성 전맹, 저시력에서 후천성 전맹으로 변한 사람, 전맹과 지체장애를 함께 가진 중복장애인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인물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각 작품마다 한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감각이 생생하게 드러나면서, 단일한 개념으로 인식되던 장애는 각기 다른 정체성으로 드러난다. 독자는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하나로 대상화되던 시각장애가 실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삶의 양상임을 깨닫게 된다.

표제작은 선천성 저시력에서 전맹이 된 김준협 씨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다. 소설의 화자는 일반 중학교를 졸업한 후 특수학교에 진학하며, 그곳에서 네 명의 친구들을 만난다. 도, 레, 미, 파, 솔로 불리는 다섯 명의 학생 중 ‘파’인 화자만이 저시력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전맹이었다. 그는 당시의 교실을 “소외감을 느끼며 겉돌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화자는 ‘솔’을 통해 연락이 끊긴 친구들의 근황을 전해듣는다. 하지만 ‘파’는 점차 전맹이 되어가고 있다는 자신의 이야기는 솔에게 털어놓지 못한다. “내 눈이 계속 멀어 빛조차 볼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 소식을 솔에게 전하지 않을 것이다. 눈이 멀어가는 게 부끄러워서는 아니다. 눈이 멀어 가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과 공포, 슬픔을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을 테니까. 눈이 멀어 간다는 게 어떤 건지 솔은 모른다. 눈이 멀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게 어떤 건지 내가 모르듯이.”

‘오늘 밤 내 아이들은 새장을 찾아 떠날 거예요’에서는 현재 두 아이의 엄마인 화자가 열 살에 서울맹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낯선 맹학교로 홀로 가게 된 어린 화자가 기댈 곳은 말을 따라 하는 곰 인형뿐이었다. 곰 인형의 배를 더듬으며 “사랑해” “보고 싶었어”라는 말을 주고받는 장면은 어린 아이가 느꼈을 슬픔과 외로움과 막막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는 따뜻한 연결의 순간도 존재한다.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과 기억을 통해 타인과 이어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인숙 언니의 손이 그녀의 손을 찾아 허공을 더듬는 게 그녀에게 느껴진다…‘손 어디 있어?’ 그녀는 망설이다 오른손을 앞으로 내민다. 인숙 언니가 자신의 손을 펼쳐 그녀의 손을 감싸듯 덮어 온다…인숙 언니의 마른 손가락들이 그녀의 손톱들을 매만진다…‘깎아야겠다.’ 똑, 똑. 손톱깎이에 그녀의 손톱이 잘려 나가는 소리가 16호실에 울린다.”

이같은 연결의 감각은 ‘파도를 만지는 남자’에서도 이어진다. 저시력으로 태어났다가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된 특수교사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에서 화자는 점차 시력을 상실하는 공포 속에서도 사회적 역할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그에게 주어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스스로 자기 일을 찾아내려고 노력하지만, 회식 자리에서 ‘넌 여기 있으면 안돼’ ‘네가 할일이 없어’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결국 그는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특수교육학과에 편입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다. 그리고 그 곳에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집을 떠나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목소리가 내게 말했어요. “우리 같이 가자.” 그날 이후로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가는 걸 나는 두려워하지 않게 됐어요…세상 어딜 가더라도 날 위해 예비해 둔 이가 있으리라는 믿음이 내겐 있어요.”

<무지개 눈>은 개인의 가장 깊은 내면이라 할 수 있는 감각적 경험을 문학적으로 재현하며, 인간 사이의 연대 가능성을 탐색한다. 김숨 작가는 시각장애인의 이야기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시, 희곡, 독백 등 다양한 문학적 형식을 활용해 그들의 감각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당신은 눈먼 제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독자 또한 이 작품을 통해 시각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의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더 깊이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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