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몇 년 사이 미국의 최대 히트 수출 품목은 누가 뭐래도 ‘부정선거론’일 듯싶다. 원래는 2016년 미 대선 때 도널드 트럼프가 출시했지만, 하필 출시한 그해에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슬그머니 회수한 상품이다. 철 지난 중고품이 세계적 메가 히트작으로 거듭난 건 2020년 대선 패배 후 트럼프 컬트와 맞물리면서다. “내가 이겼다”는 트럼프의 한 마디에 부정선거론에 심취한 지지자들이 미 의회 의사당을 점거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사실 트럼프 스스로 부정선거론이 얼마나 불량 상품인지를 알고 있다는 정황이 수두룩하다. 미연방검찰은 트럼프가 부정선거론을 바탕으로 2020년 대선 불복을 시도한 혐의로 2023년 8월 기소하면서 “트럼프는 부정선거론이 허위임을 알고 있다”고 판단했다.
트럼프가 측근들에게 부정선거론을 “헛소리”라고 했다는 증언 역시 공소장에 담았다. 그래선지 트럼프는 이번에 대통령직을 다시 거머쥐고도 부정선거론을 슬쩍 외면한다.
그러나 바다 건너 나라들의 우파들은 미 의회 의사당 점거를 계기로 부정선거론의 상품성을 곧 알아차렸다. 이 얼토당토않은 음모론이 기존 보수 이데올로기에 부족한 행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이 이들에게 매력 포인트였다.
여기에 “전자투표기가 외국에 해킹당했다”(브라질), “투표용지에 연필로 이름을 쓰면 간첩이 조작한다”(일본)고 변주를 넣으면, 현지화에도 안성맞춤이다. 우파들은 부정선거론을 수입하기로 결정한다.
그 결과, 동방의 어느 나라에선 군 수사기관을 동원해 부정선거론을 파헤치겠다며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이 나올 정도로 대히트를 쳤다. 브라질·독일 등등에서 부정선거론이 인기를 구가했지만 이 나라만큼은 아니었다.
계엄이 실패로 돌아간 뒤로도 몇 달째 “큰 게 온다”며 부정선거론에 빠진 열성 소비자들이 활약 중이고, 보수 간판을 내건 전통의 어느 점포는 열성 소비자들을 등에 업은 유튜버 한 명에 쩔쩔맨다. 다단계 사기 피해자들처럼 피라미드 꼭대기에 위치한 트럼프가 곧 대박의 꿈을 이뤄주리라 믿고 여전히 상품을 구매하고, 지인들을 전도한다.
불량 상품은 어디까지나 불량 상품이라는 것이다. 금방 고장이 나거나, 음식이라면 탈을 낸다. 몸이 크게 상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불량 상품을 제조해 파는 사람 중에 본인이 직접 그 상품을 믿고 쓰거나 먹는 사람은 없다. 트럼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