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사진)가 푸슈킨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 ‘황금닭’은 점성술사에 의지해 나라를 다스렸던 무능하고 게으른 왕을 그린 작품이다. 미련하게 살이 찐 도돈 왕은 나라를 통치하는 데에 피로를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늙은 점성가가 전쟁을 미리 알려주는 황금닭을 선물한다. 이 황금닭 덕분에 왕은 편하게 나라를 통치한다.
어느 날 황금닭이 적군의 침입을 알리고, 왕자들을 전쟁터로 내보내지만 두 사람 모두 죽고 만다. 아들을 잃고 슬퍼하고 있는데, 절세미인 세마카 여왕이 나타난다. 여왕에게 한눈에 반한 왕은 그녀를 왕비로 삼으려 한다.
“절세의 미인 옆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저자는 누구지? 그는 신분상으로는 황제지만 몸과 영혼은 노예라네. 그가 누굴 닮았지? 낙타? 그 이상한 생김새와 행동과 태도는 영락없는 원숭이야.”
하지만 도돈 왕은 자기가 우스꽝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점성술사가 다시 나타나 황금닭을 준 대가로 세마카 여왕을 달라고 한다. 왕이 거절하자 갑자기 황금닭이 그를 쪼아 죽인다. 이에 백성들이 노래한다.
“황제는 죽었어. 착한 남자가 죽임을 당했어. 행복한 황제. 태평한 황제. 영원히 잊지 못할 황제. 지배자 중의 지배자. 정말 현명했지. 편안하게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백성들을 다스렸어. 화가 났을 때는 무서운 폭풍 같았지. 닥치는 대로 죽여서 모두 두려움에 떨었어. 하지만 구름이 걷히고 무거운 공기가 맑아지면 우리 황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생하게 빛나곤 했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백성을 다스렸던 황제. 화가 풀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생하게 빛나던 황제. 백성과 신하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죽은 황제에 대해 얘기한다. 모든 것이 꿈인 듯 신비하고 몽롱한 색채를 띤 멜로디로.
진회숙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