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대학 강의실엔 27일 오전 평소 수업 수강생의 절반만 앉아 있었다. 원래는 프랑스 철학 강의 시간이었지만 이날 수업의 주제는 ‘민주주의’였다. A교수는 기존 강의 내용이 아닌 ‘파리코뮌(1871년 파리 시민들이 세운 자치 정부)’ 얘기를 꺼냈다. 헌법재판소와 ‘남태령 대첩’도 언급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정치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2시간짜리 수업이었지만 A교수는 “오늘은 역동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날”이라며 수업을 30분 일찍 끝냈다. 학생들은 박수로 답했다.
이날 전국 곳곳의 대학생들은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주최하는 ‘윤석열 즉각 파면 민주주의 수호 전국 시민총파업의 날’을 맞이해 ‘동맹 휴강’에 동참했다. 교수들은 휴강이나 대체수업을 하거나 응원 메시지로 지지 의사를 밝혔다.
A교수는 전날부터 ‘동맹 휴강에 참여할 계획’이라며 양해를 구하는 학생들의 e메일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고민 끝에 민주주의 특강으로 수업을 바꿨다. 이 수업을 들은 김은수씨(26)는 “동맹 휴강에 맞춘 강의를 준비해주신 게 감사했다”며 “수업을 들으며 왜 동맹 휴강과 같은 행동이 필요한지를 역사적, 철학적 맥락에서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시청역 앞에서 열리는 대학생들의 ‘평등시민 총파업’에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헌법질서 회복과 민주주의 재구성, 그리고 여러분 모두의 마음과 일상의 안녕을 위한 활동들을 하시기 바란다’며 휴강을 공지하는 교수도 있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한 교수는 이날 동영상 강의로 수업을 대체하겠다는 공지글에 앞글자만 따서 읽으면 ‘동맹휴강 화이띵’이라고 읽히는 문구를 숨겨두기도 했다. 출석 체크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학생들을 지지한 교수들도 있었다. 일부 교수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정 선고일에도 민주주의와 관련된 대체 수업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생들도 “안전한 강의실에 머무르는 것이 부끄러웠다”며 강의실 대신 광장을 택했다. 대학생 손원민씨(24)는 교수에게 메일을 보낸 후 수업 두 개를 ‘자체휴강’ 했다고 말했다. 손씨는 “길어지는 탄핵 국면에 익숙해지기보다는 조용히 견뎌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수업을 듣는 게 더 불안할 것 같아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대 인문대학의 역사 전공 수업을 수강하는 대학생 김선아씨(22)는 “선고 당일 교수와 학생들이 같이 광장으로 가서 ‘소수자를 포괄하는 모두를 위한 정치를 하라’고 외치고 싶다”고 했다.
일부 학생들은 대자보 등을 통해 동맹 휴강을 독려했다. 대학가 활동가 모임 ‘학생운동 리빌딩 작당모의’는 성명문에서 “헌법재판소는 내란수괴 윤석열의 파면 선고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며 “동맹휴강은 윤석열을 파면시키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