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애쓰지
저 회사는 정의로울까? 과거 기업의 평가 기준은 숫자였습니다. 요즘은 환경(Environmental)에 대한 책임, 사회(Social)적 영향, 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 등 이른바 ‘ESG 관점’에서 기업을 판단합니다. 비크닉은 성장과 생존을 위해 ESG에 애쓰는 기업과 브랜드를 조명합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은 잠시 잊어주세요. 착한 일은 널리 알리는 게 미덕인 시대니까요.

지난 4~5년 사이 뜨거운 화두였던 ESG가 주춤합니다. 기업·투자사·자문사들이 ESG를 너도나도 앞세웠던 과거와 대조되는데요, 시장의 유동성이 줄고 기업들의 살림 고민이 커지며 ESG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반(反) ESG 정책을 앞세운 트럼프 정부의 재집권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사실 매출이나 영업이익으로 평가받는 기업이 비재무적 가치를 지켜가는 건 쉽지 않습니다. 사업 자체가 장기적이고 당장 숫자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죠. 전문가들 역시 “지속가능성 이슈를 법규준수나 브랜드 이미지 제고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중장기적 기업가치 제고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합니다(2024,‘지속가능금융의 전망과 과제’ 정책심포지엄).
이처럼 이론과 현실의 차이가 생기는 ESG 경영에서 수면 전문 브랜드 시몬스의 행보는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8년 이후 ESG 경영을 이어가는 동안 재무적 성과는 오히려 날개를 달았으니까요. 지난 2023년, 처음 업계 1위 매출을 찍었고 24년에도 왕좌의 자리를 꿋꿋이 지켰습니다. 착한 경영이 쏠쏠한 매출로 이어질 수 있었던 비결, 대체 무엇일까요. 비크닉이 살펴봤습니다.
시몬스, 업계 ‘매출왕’ 됐다…2년 연속 1위 굳건

지난 24일 공시에 따르면, 시몬스는 2024년 매출 3295억으로 업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전년 대비 5% 늘어난 데다 1992년 한국 법인 설립 이후 최대치를 경신했어요. 영업이익 또한 527억원으로 전년 대비 65%, 영업이익률도 6%포인트 올라 16%로 상승했습니다.
이 성적표는 가구업계 불황을 이겨냈다는 의미도 크지만, 방점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수년간 부동의 1위를 해 온 경쟁업체를 제치고 2년째 대세 굳히기를 가시화했다는 것이죠. 2001년 안성호·안정호 두 형제가 각각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의 경영을 맡았을 때만 해도 매출 규모가 다섯 배나 차이가 났으니 그야말로 ‘역전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겁니다.

시몬스 측은 하이엔드 비건 매트리스 ‘N32’ 와 뷰티레스트 중에서도 초프리미엄 라인업인 ‘뷰티레스트 블랙’을 내세워 초고가 시장을 선점하려 했던 전략이 먹혔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뷰티레스트 블랙은 연평균 20%씩 매출이 성장했고요.
하지만 이것만으로 왕좌의 실력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시몬스는 품질·가격만큼 ‘소비의 이로움’을 따지는 MZ 세대에게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바로 ‘착한 침대’ 전략이에요. 급조됐다 사라지는 이벤트가 아닌, 기업과 제품에 오래 가치를 더하는 승부수를 걸었습니다. ‘착하니까 돈도 잘 번’ 선순환이 제대로 통한 겁니다.
시몬스의 ‘착한 침대’ 전략 넷

① “당장 손해 보더라도”…기업 비밀 특허 공개
시몬스는 2018년부터 가정용 전 제품에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 매트리스를 적용했어요. 독자 개발한 신소재부터 봉합 실과 봉합 면 테이프, 매트리스 밑부분의 부직포까지 모두 난연 기능 부속물을 쓰는 거죠. 국내에선 최초이자 유일하다 보니 2020년엔 관련 특허도 땄어요.
그런데 지난해 1월, 통 큰 결정을 내립니다. 경쟁사 누구나 이 기술을 쓸 수 있도록 특허를 공개한 것입니다. 특허는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자산인데요,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미국·캐나다·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실내 화재 시 내부가 화염에 휩싸이지 않고 대피 시간을 벌 수 있도록 난연 매트리스 유통을 법제화하고 있어요. 시몬스는 여기에 착안, 타 브랜드도 난연 제품을 제조·유통하면 화재 시 거주민과 소방관 모두의 안전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런 ‘손해 보더라도’ 결단은 최근에도 있었어요. 지난해 7월 티몬의 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입점업체를 넘어 소비자 피해로 퍼지자 시몬스는 구제에 나섰습니다. 14억원의 피해를 감수하고 제품을 정상적으로 배송한 거죠. ‘기업의 문제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경영 철학이 그대로 반영한 사례였습니다.
② 제품의 폐기 이후까지 생각하는 ‘진짜 친환경’
“나는 환경호르몬이 나오는 매트리스를 반대합니다.”
쓰레기 더미 속에 누워있는 모형 인형. 화면과 함께 내레이션이 등장합니다. 지난해 11월 선보인 시몬스의 N32 침대 광고인데요, 편안함이나 쾌적함을 극대화하는 여느 침대 광고와 달리 ‘친환경의 가치’ ‘지속 가능한 미래’ 등 묵직한 메시지 던집니다.

광고는 시몬스가 고민한 친환경의 해법이기도 합니다. 나무를 심고, 쓰레기를 줍고, 플라스틱을 덜 쓰는 것도 좋지만, 기업 활동 자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죠. 수익과 가치를 동시에 만들어 내면서요. N32 매트리스도 그 사례입니다. 제품은 원단·충전재에 아이슬란드 유기농 해조류와 식이섬유에서 추출한 비건 소재를 써서 폐기된 이후 생분해가 가능하다고 해요. 상당 부분이 수명을 다한 후 자연으로 돌아가죠. 이 특별함으로 지난해 1월 침대 가구 카테고리 최초로 전 제품 비건 인증(비건표증인증원)을 받기도 했어요.
눈길을 끄는 건 인증 이후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사실입니다. 시몬스에 따르면, 24년 1~4월 판매량이 직전 4개월보다 30%가량 늘었다고 해요.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20·30세대의 심리를 정확히 파고든 거죠.

하지만 생분해 폐기물보다 근본적인 건 쓰레기를 덜 만드는 것 아닐까요. 그러자면 기업은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시몬스는 여기에도 비장의 카드를 내놨어요. 지난해 7월, 국내 최초로 포스코산 경강선에 ‘바나듐’ 소재를 적용한 뷰티레스트 신제품 선보였습니다. 바나듐은 강도와 탄성·내구성이 우수해서 사실상 반영구적 사용이 가능한 소재로 분류되는데, 이를 적용한 뷰티레스트 ‘바나듐 포켓스프링’은 하루 20만 번 이상 스프링을 위아래로 압축하는 내구성 테스트를 1,000만 번 이상 진행해도 끊어지지 않는 내구성을 증명했다고 해요.
③ 소비자가 5% 기부…착한 소비의 연결 고리 만들다
요즘은 선행에도 트렌드가 존재합니다. 기부 역시 단순히 현물이나 현금을 주는 것보다 참여·소비·체험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죠. 또 ‘돕고 싶어서’라는 동기보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를 고민하고, ‘더 나은 사람 되기’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기부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사랑의 열매 『기부 트렌드 2024』).

소비를 기부로 환원시키는 시몬스의 기부 프로젝트는 이런 추세를 정확히 반영합니다. 2023년 ESG 침대 프로젝트를 선보이면서, ‘뷰티레스트 1925’ 판매분 중 소비자 가격의 5%를 기부하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3000개 이상의 제품을 팔며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센터 리모델링 기금으로 6억원 이상을 모았답니다. 해당 센터는 소아 외래와 입원 병동·신생아 중환자실 등과 부대 시설을 조성할 힘을 얻은 셈입니다. 시몬스는 이와 별도로 지난 2020년부터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 환아 치료비로 매년 3억원씩, 총 18억원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④ 이천의 시그너처, 침대를 더 하다
경기도 이천하면 떠오르는 것, 쌀 또는 도자기가 대표적입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시그너처가 있다는 건 그만큼 사람을 불러모으는 힘이 되죠. 요즘 지자체마다 지역축제에 사활을 거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고요.

시몬스가 2018년 처음 문 연 복합문화공간 ‘시몬스 테라스’ 역시 지역의 활기를 더하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제품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대형 쇼룸의 역할이지만, 실제 벌이는 일들은 기업 독자의 행보가 아니니까요. 이천 농특산물 직거래 장터 ‘파머스 마켓’을 열어 먹거리를 브랜딩 하고, 연말에는 지역 상생 차원에서 ‘크리스마스 마켓’도 선보였어요. 특히 크리스마스 마켓은 대형 트리와 일루미네이션이 입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2만5000명이 이곳을 찾았는데, 인근 음식점 매출도 30% 이상 뛰는 효과를 봤다고 합니다. 시몬스 측은 “점점 지역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이천쌀문화축제’와 연계하는 등 지역 상생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친환경부터 기부, 지역 상생까지 선한 행보가 매출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걸 증명한 시몬스. 지금 얻은 성과는 단순히 ‘얼마나 많이 팔았느냐’와 ‘어떻게 팔았느냐’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답이 될 듯합니다. 올해에는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제품 가격동결’을 결정했다고 하는데요, 소비자를 향한 진심을 어떻게 더 보여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