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들어 중고폰을 사고팔 때 '안심거래' 마크가 화면에 등장하는 모습을 경험했을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5월에 시행한 '중고폰 안심거래 사업자 인증제도' 덕이다. 이 제도로 번개장터, 민팃 등 주요 플랫폼에서 거래사실 확인서 발급, 개인정보 완전 삭제 보증 등 한층 강화된 안전장치가 도입돼 소비자는 걱정 없이 중고폰을 거래할 수 있다.
이처럼 시장 발전 핵심은 '신뢰받는 거래 환경'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중고거래 사기 민원만 2700건을 넘었고, 피해액 역시 수천억원대로 늘어난 상황이다. 그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어 고가 전자제품을 미끼로 한 먹튀 사례부터 가품 판매, 호텔 예약, 부동산 매매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래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렇듯 사기, 개인정보 유출 등 각종 부작용이 계속되자 국회도 팔을 걷고 나섰다.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돼 플랫폼 책임을 강화하고, 에스크로(안전결제) 도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또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법,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개정 논의도 본격화되면서 신원 확인과 정보 보호 역시 더욱 촘촘해질 전망이다.
업계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중고거래 대표 플랫폼인 번개장터는 작년 8월부터 모든 거래를 에스크로 방식으로 전환했다. 중고나라도 올해 하반기부터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구매자가 실물 확인 후 '구매확정'을 눌러야 판매자에게 대금이 지급되는 한층 투명한 거래 구조가 중고시장에 정착되는 분위기다. 개별적인 현금거래·계좌이체 등 위험성이 높은 방식은 원천적으로 차단돼 소비자 안전을 확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번개장터에 따르면, 인공지능(AI) 기반 실시간 사기 모니터링 및 에스크로 안전결제 시스템 도입 이후 사기 비율은 80% 이상 줄고 거래량은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안전한 거래 환경'이라는 테마에 시장이 즉각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이처럼 투명하고 안전한 거래 구조가 만드는 신뢰 토대는 국내 리커머스 시장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올해 시장 규모는 43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중고차·중고폰·전자제품·의류 등 다양한 품목에서 거래가 활기를 띠고 있다. 무엇보다 이렇게 탄탄해진 내수가 '중고 수출'로 이어져 국가 차원 성장 동력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올해 1~5월 중고차 수출은 31만9997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8%나 증가했고, 연간 70만대 돌파가 전망된다. K굿즈, 의류, 전자기기 중고 수출도 꾸준히 성장세다.
이제 정부 정책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고=환경보호'라는 기존 인식을 넘어, 수출 산업으로까지 리커머스의 역할을 확장해야 한다. 환경보호를 위해 단순히 지원금을 주거나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리커머스가 자생적인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수출 금융·물류 지원 확대 △부가세 의제매입 등 세제 지원 △수출 거점과 단지 조성 같은 종합적인 산업 정책이 요구된다. 이미 선진국은 관세 인하, 통관 간소화 등으로 중고 수출을 전략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제 신뢰와 혁신이 쌓여가는 국내 중고시장이 글로벌 수출 산업의 무대에서도 'K중고' 브랜드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정부, 업계, 소비자 모두가 함께 신뢰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안전이라는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 중고산업의 기회와 가능성은 지금이 바로 그 출발점이다.
윤혜선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mhsyoon@hanyang.ac.kr